고양이 11

|컬럼| 35. 요한복음과 고양이

요한복음과 고양이 '아무개'라는 뜻의 우리말 '홍길동'을 영어로는 'John Doe'라 한다. 'John'은 서구에서 아주 빈번하게 쓰이는 남자 이름으로 이 가상적인 성명은 18세기 중엽에 영국법정에서 토지 소유권에 대한 모의재판을 했을 때 처음 쓰였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부르는데 쓰이기 시작했단다. 1911년부터 후커(hooker)들이 만들어낸 슬랭으로 'John'은 그들의 고객을 뜻하면서 자기들 비지니스를 알선하고 보호해 주는 핌프(pimp)를 지칭했다. 핌프는 우리 슬랭으로 뚜쟁이 또는 기둥서방이라는 의미. 그리고 1930년 경부터 소문자로 시작하는 'john'은 남자화장실이라는 뜻이 됐다. 미 동북부 사람들, 넓게는 모든 미국사람을 양키라 부르기도 ..

|컬럼| 19.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우리집 옆집 도둑괭이가 영어 슬랭에 고양이가 자주 나온다. 우리말 속어에는 ‘여우'가 더러 등장하지만 고양이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대충 물만 찍어 바르는 세수를 ‘고양이 세수'라고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라는 뜻으로 ‘There's more than one way to skin a cat (고양이 껍질을 벗기는 방법이 하나 둘이 아니다.)’라는 속어가 있다. 양키들이 예상 외로 시치미를 뚝 따고 쓰는 표현인데 그 때마다 말하는 사람의 안색을 잘 살펴보면 고양이의 야들야들한 살갗을 벗기는 따위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양이가 들어가는 영어 속담을 조사해 보자.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아버지의 비단잉어 / 김종란

아버지의 비단잉어 김종란 아버지 떠나신 후 머무시던 곳에 갔는데 흰 발을 가진 낯선 고양이 오랜만이다 하는 커다란 눈으로 잠잠히 전한다 단정한 모습 비단잉어와 함께 길을 나선 아버지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 시간 아버지와 함께 그는 이 꿈에서 깨어 나고 싶었을까 모두 잠든 밤 춤추듯 뛰어오른 비단잉어 아버지는 그의 귓전에 무슨 말씀을 들려 주셨을까 낮과 밤 연못가를 지나시던 아버지 내민 손을 툭툭 치면서 비단잉어는 마음에 가득한 무슨 말들을 했을까 © 김종란 2021.07.05

밤을 걸어나가다 / 김종란

밤을 걸어 나가다 김종란 검푸른 탐조등이 가르는 빛과 어둠 사이 흔적으로 쟁반에 받쳐든 열대 과일, 머리에 꽃을 꽂은 타히티 여인들 고갱이 받은 것들, 흔적으로 한 마리 고양이 대낮에서 밤으로 숨어 들어와 어두워져 선명한 기억에 촉수를 뻗으며 뒤척이는 흔적으로, 걸어 나가기 발자국 소리 내지 않으며 스쳐 지나가듯 고양이의 눈으로, 대낮인듯 © 김종란 2021.05.10

은빛 꽃 / 김정기

은빛 꽃 김정기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양이는 여름마다 색맹을 앓는다 화초밭의 색깔 모두 빨아 먹고 물기마저 흡수한 그의 눈은 은빛만 보인다 찬란한 세상을 흑백으로 뒤집어 꽃피고 지고 이파리들 새순도 적요함으로 다스려 밑그림만이 선명하다 여름은 온통 은빛 빗방울이 되어 가는 길을 묻고 있는데 몸의 주름살 펴서 찬물에 헹구는 색깔이 없는 황홀함이여 윗동네 클린턴이 사는 차파쿠와 집값 같이 계절은 정확한 현찰이다 가늘고 굵은 선이다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의 눈에 보이는 빗방울은 은빛 꽃이다 © 김정기 2010.07.05

고양이가 사는 집 / 김종란

고양이가 사는 집 김종란 누군가 떠나는 것에 대해 말해주었으면 떠나보라고 말해주었으면 고양이는 집에 들어와 때론 기지개 펴며 창틀에 앉아 노곤한 해바라기 불현듯 어른대다 사라지는 뜬 소식에 졸음이 쏟아져 안경이 코밑에 걸린 안주인을 지켜보며 우아한 꼬리를 부드럽게 펼 수 있는 작은 공간 깃털에 젖은 밤이슬 털어내며 나뭇잎 사이를 날아올라 사고뭉치 이 장난감 새들 내가 바라볼 때 제발 최면에 걸리시라 안하무인 내 거드름에 푹 빠지시라 내가 떠났더라도 잊지 않기를! © 김종란 2009.11.12

의자와 시계 고양이 / 김종란

의자와 시계 고양이 김종란 시간과 시간 사이에 놓여있다 흐름이란 다른 공간으로 사뿐히 뛰어넘는 것 깜빡 살아나는 빛을 감지한다 동공 깊숙이 세계와 나 고풍의 유리창은 예의 바르게 닦여 있다 침묵의 구름 노회(老獪)한 나무 곁 없는 듯이 머문다 소리를 너에게 건넨다 사람 가득 차 붉은 무리의 빛이 시야의 끝에서 잠시 흔들리듯 의자에 앉아 초침 소리를 바라본다 빛은 깜빡 진다 © 김종란 2009.09.09

|컬럼| 183. 고양이와 개와 쥐

It rained cats and dogs last night! 정말 그랬다. 요란하게 싸우는 고양이와 개처럼 지난 밤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승용차 여섯 대가 이리저리 부딪혀서 사고가 난 고가도로를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다. 더러는 샛길을 이용하러 했지만 교통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출근이 이렇게 늦어진다는 건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경에 빠졌다는 뜻으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가 있다. 사람이 '악마와 짙은 청색의 바다'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섬뜩한 표현이다. 이런 걸 한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 하지만 나는 귀에 얼른 쏙 들어오는 '빼도 박도 못한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더 좋다. 그리고 그럴 때는 그냥 '쥐 죽은 듯' 가만이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