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꽃
김정기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양이는
여름마다 색맹을 앓는다
화초밭의 색깔 모두 빨아 먹고
물기마저 흡수한 그의 눈은
은빛만 보인다
찬란한 세상을 흑백으로 뒤집어
꽃피고 지고 이파리들 새순도
적요함으로 다스려 밑그림만이 선명하다
여름은 온통 은빛 빗방울이 되어
가는 길을 묻고 있는데
몸의 주름살 펴서 찬물에 헹구는
색깔이 없는 황홀함이여
윗동네 클린턴이 사는 차파쿠와 집값 같이
계절은 정확한 현찰이다
가늘고 굵은 선이다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의 눈에 보이는 빗방울은 은빛 꽃이다
© 김정기 201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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