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83. 고양이와 개와 쥐

서 량 2013. 6. 4. 19:58

It rained cats and dogs last night! 정말 그랬다. 요란하게 싸우는 고양이와 개처럼 지난 밤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승용차 여섯 대가 이리저리 부딪혀서 사고가 난 고가도로를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다. 더러는 샛길을 이용하러 했지만 교통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출근이 이렇게 늦어진다는 건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경에 빠졌다는 뜻으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가 있다. 사람이 '악마와 짙은 청색의 바다'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섬뜩한 표현이다.

 

이런 걸 한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 하지만 나는 귀에 얼른 쏙 들어오는 '빼도 박도 못한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더 좋다. 그리고 그럴 때는 그냥 '쥐 죽은 듯' 가만이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도 대충 알고 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쥐일까.

 

우리는 쥐와 가깝게 지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만 해도 그렇다. 같은 의미에 해당되는 영어의 'Walls have ears (벽에도 귀가 있다)'는 싱겁고 퉁명스럽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격언을 'Every dog has his days'라 하는 걸 보면 양키들은 아무래도 개와 친근한 것 같다. 허기사 서구의 'rat'는 슬랭으로 '고자질하다'는 뜻이니 동양이건 서양이건 쥐는 인간의 밀담(密談)을 엿듣는 재능이 대단한 모양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영어로는 'Mend the barn after the horse is stolen' 이라며 소 대신 말이 등장한다. 우리의 침착한 소도 서구의 성급한 말도 애착심의 대상이다.

 

이런 상황을 한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 칭한다. 중국에는 죽은 환자에게 처방전을 쓰는 머리 나쁜 의사가 다소 있었던 모양이지.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사자성어에 맞서 영어에도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이 있다. 슈퍼마켓이 없던 시절에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하여 옛사람들이 돌을 던져 새를 쳐죽이는 처참한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말로는 이런 속담이 없는 것 같아서 짐짓 마음이 놓인다.

 

호랑이 없는 골에는 토끼가 왕이라는 말을 'When cats are away, mice will play' (고양이가 없으면 쥐들이 놀아난다.)라 하는데 이 때도 미키 마우스 같은 귀여운 서구의 쥐들이 주인공이다.

 

우리는 속담에 동물보다 사람을 노골적으로 등장시키는 용기가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은 남녀의 정에 대한 얘기라서 얼른 이해가 가지만 같은 말을 'What's good for the goose is good for the gander' 즉, '암거위에게 좋은 것은 숫거위에게도 좋다'는 말은 뜻을 알면서도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생각이 든다.

 

'The pot calls the kettle black' (냄비가 주전자를 검다고 한다.)는 한참 고민을 해야 겨우 그 뜻을 알아차리는 어려운 속담이다. 그러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누가 자기의 잘못은 모르고 남의 사소한 결점을 들춰내는 장면이 후다닥 떠오르지 않는가.

 

미국에 오래 살아온 당신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하는 대신 'Speak of the devil and he is sure to appear'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단 무의식 속에서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인 호랑이가 양키들의 악마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엄숙하게 깨달을 것이다. 그나저나 소문에 의하면 먼 옛날 고려적에 우리와 친숙한 호랑이는 담배를 피웠다 하던데 서구의 무서운 악마가 담배를 피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혹시 그럼 술을 마셨는가 몰라.

 

© 서 량 2013.06.02

-- 뉴욕중앙일보 2013년 6월 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