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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430. 멘붕(Men崩)

병동환자 브루스가 틈만 생기면 주장한다. “I am not mental.” - 표준영어로 “I am not mentally ill,” 할 것을 줄여서 하는 말. 자기는 정신병이 없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병동에 체류할 이유가 없으니까 어서 퇴원을 시켜달라는 압력이다. 병원 말고 딱히 살 곳이 없을 뿐더러 설사 있다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강짜를 부리는 환자를 받아주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없다. 그도 나도 ‘멘붕’이 일어날 정도다.멘붕은 브루스가 떠들어대는 ‘mental’의 ‘men’과 붕괴(崩壞)의 첫 자의 합성어로서 2000년대부터 한국에서 유행한 말이다. 2012년에 그해 최고의 유행어로 뽑혔다. 정신이 무너지고 깨진다는 뜻. 실성했다, 정신줄이 나갔다, 심하게는 미쳤다는 표현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

|컬럼| 373. 달 빨아들이기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인사할 때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는다. 물이 귀한 건조지대에 살면서 서로에게 수분을 전해 주는 습관이란다. 결혼식에서도 하객들이 삥 둘러서서 신부에게 성심성의껏 침을 뱉는다. 마사이 족의 해와 달에 대한 신화가 있다. - 사소한 일로 남편인 해가 아내인 달을 때린다. 달이 덤벼들어 해의 얼굴을 할퀸다. 해는 달의 얼굴에 수많은 상처를 입히고 한쪽 눈알을 빼 버린다. 남성우월자 해는 자기의 흉한 꼴을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더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다. 눈이 부셔 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남들에게 그의 체통은 유지된다. 달은 상흔을 감추는 기색도 없이 밤하늘을 마냥 은은하게 밝혀준다. 이 신화가 마음에 든다. 인사법만큼이나 기존관념을 깬 사고방식에 매료된다. 해는 가까이하기에 무섭고 두..

|컬럼| 158. 눈치 코치

'hunch'는 워낙 15세기경 '튀어나오다' 혹은 '돌출하다'는 말이었고 나중에 어깨나 등을 활처럼 구부린다는 뜻이 됐다. 등허리가 튀어나왔다 해서 꼽추를 'hunchback'이라 한다. 그러던 'hunch'가 1904년부터는 '예감'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어떤 예감이 떠 오를 때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hunch'는 송이, 뭉치 또는 다발을 일컫는 'bunch'와 말 뿌리를 같이한다. 해리 벨라폰테의 히트곡 '바나나 보트 송'의 중간부분에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하는 바로 그 'bunch'도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나나를 다발로 묶어 놓은 자마이카의 야간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다. 그들이 아침 해가 밝아오자 ..

|컬럼| 478. 혼동

어릴 적에 혼동과 혼돈의 뜻이 곧잘 헷갈렸다. 서로 발음이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좀 그렇다.  네이버 사전은 ‘혼동(섞을 混, 같은 同)’을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뒤섞어서 보거나 생각함’, 그리고 ‘혼돈(섞을 혼, 막힐 沌)을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라 풀이한다. 영어로 혼동은 ‘confusion’. 혼돈은 ‘chaos’. 이 두 말은 발음이 서로 생판 다르기 때문에 뜻이 섞갈리지 않는다.  요컨대 혼동과 혼돈은 뒤섞거나 뒤섞이는 것이 문제다. 불고기, 상추, 고추장, 등등을 숟가락으로 뒤섞어 비벼먹는 비빔밥은 별로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을 비빔밥 먹는 식으로 하는 사람은 생각이 부실하다는 말을 듣는다. 오늘 그룹세션 타이틀은 ‘con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