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인사할 때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는다. 물이 귀한 건조지대에 살면서 서로에게 수분을 전해 주는 습관이란다. 결혼식에서도 하객들이 삥 둘러서서 신부에게 성심성의껏 침을 뱉는다.
마사이 족의 해와 달에 대한 신화가 있다. - 사소한 일로 남편인 해가 아내인 달을 때린다. 달이 덤벼들어 해의 얼굴을 할퀸다. 해는 달의 얼굴에 수많은 상처를 입히고 한쪽 눈알을 빼 버린다. 남성우월자 해는 자기의 흉한 꼴을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더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다. 눈이 부셔 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남들에게 그의 체통은 유지된다. 달은 상흔을 감추는 기색도 없이 밤하늘을 마냥 은은하게 밝혀준다.
이 신화가 마음에 든다. 인사법만큼이나 기존관념을 깬 사고방식에 매료된다. 해는 가까이하기에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거늘. 불처럼 위험천만한 해에 비하여 달은 물처럼 친근하게 당신에게 접근한다. 해의 양기와 달의 음기가 서로 상처를 주다니! 참으로 마사이족스러운 발상이다.
최명희(1947~1998)의 대하소설 ‘혼(魂)불’에 흡월(吸月)이라는 한자어가 나온다. 11세기 이전부터 알려진 ‘흡월정법(吸月精法)’은 이렇게 가르친다. - 양다리를 자연스럽게 벌리고 서서 양손을 들어 달을 품는 자세로 달을 응시한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달의 정기를 코로 천천히 들이마신다. (네이버에서 발췌)
흡월에 대응하는 옛 선비들의 거풍(擧風)은 또 어떤가. 심산유곡에서 성기를 대놓고 내놓아 바람과 볕을 쏘여 남성의 기를 증강시키던 우리의 선조들은.
이규보(1168~1241)의 영정중월(詠井中月, 우물 속 달을 노래하다)은 달을 탐하는 중을 이렇게 읊는다. - 산속 중이 달빛을 탐하여/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절에 다다르면 곧 깨달으리/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비워지는 것을. - 달빛도 공(空)이라는 메시지다. 색즉시공으로 텅 빈 달이여!
2020년 추석에 나훈아가 성대한 노래 잔치를 벌였다. 군대 시절 전방근무를 할 때 유행하던 그의 히트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련히 떠오른다. 같은 무렵 김세레나의 히트곡에서 시집간 갑순이와 화가 나서 장가간 갑돌이가 첫날 밤에 제각기 달을 보고 울던 3박자 멜로디도 울린다. 60년대 말경 우리는 한국에서 눈물하고 달 빼 놓으면 어찌 살았나 싶지.
나훈아의 ‘님 그리워’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저 달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내 님은 간 곳이 없네 ~ ♪” 이때 ‘님’은 임자, 임금님, 담임, 황진이의 ‘어른님’, SNS에서 잘 쓰이는 호칭 ‘님’과 말뿌리가 다 같다. 나훈아의 ‘님’에는 사랑하는 여인은 물론 임금님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성삼문의 “님 향한 일편단심,” 하는 바로 그 ‘님’!
그는 1982년 히트곡 ‘울긴 왜 울어’의 시작에서 “울지 마~♪” 하며 고함친다. 더 이상 울며불며 달에게 님 계신 곳을 물어보지 않고 그 대신 최근 곡 ‘테스 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숱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하며 슬픈 듯 한탄하듯 묻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훈아는 질문한다.
‘ask for the moon’이라는 관용어를 생각한다. 직역으로 달을 원한다는 뜻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의미다. 나훈아는 달을 원하는 것처럼 부질없이 님을 찾지는 않기로 마음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니 차라리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적 투정을 부리고 있다.
© 서 량 2020.10.04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10월 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71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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