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58. 눈치 코치

서 량 2012. 5. 28. 12:54

 'hunch'는 워낙 15세기경 '튀어나오다' 혹은 '돌출하다'는 말이었고 나중에 어깨나 등을 활처럼 구부린다는 뜻이 됐다. 등허리가 튀어나왔다 해서 꼽추를 'hunchback'이라 한다.

 

 그러던 'hunch' 1904년부터는 '예감'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양키들은 어떤 예감이 떠 오를 때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튀어나오는 모양이다.

 

 'hunch'는 송이, 뭉치 또는 다발을 일컫는 'bunch'와 말 뿌리를 같이한다. 해리 벨라폰테의 히트곡 '바나나 보트 송'의 중간부분에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하는 바로 그 'bunch'도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나나를 다발로 묶어 놓은 자마이카의 야간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다. 그들이 아침 해가 밝아오자 어서 집에 가려고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하며 소리치는 칼립소 리듬의 민요다.

 

 이제 나는 '헌치' '번치'와도 발음이 비슷하고 운율도 잘 맞아 떨어지는 우리말의 '눈치'에 대하여 논설을 펼칠 요량이다. 눈치 빠른 당신이 이미 예감했겠지만 꼽추나 바나나 뭉치에 비하여 '눈치'는 매우 섬세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볼 때 주로 곁눈질을 하기 마련이면서 그 다소곳한 태도에는 전혀 우락부락하거나 돌출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어령 석학의 말대로 눈치란 강자에 대처하는 약자의 방어기전이다.

 

 오래 전부터 눈치의 어원에 대하여 궁금해 왔지만 우리말 어원학의 태두인 김민수와 서정범 같은 국어학자들은 눈치에 대하여 별 언급이 없다.

 

 내 연구 결과에 의하면 눈치는 눈과 ''의 합성어로 보인다. 길이를 재는 우리의 옛날 단위인 ''는 한자의 촌()에 해당하고 그 길이가 약 3.03cm라 한다. 줄잡아 성인의 눈 길이가 아닐까 하는데.

 

 눈치를 살핀다는 말은 눈의 치수를 잰다는 뜻이다. 눈이 영혼의 창문이라는 격언도 있거니와 상대방 눈의 가로 세로를 측정한다는 말은 즉 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나 진배없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눈치가 있는 사람은 독심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타고난 감수성에 따라 그 속도가 빠르거나 느린 사람을 두고 눈치가 빠르거나 느리다고 우리는 무심코 말한다.     

 

 영어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우리말의 눈치가 들어간 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 무척 까다롭고 힘이 들기 때문에 천상 그때그때 의역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양키들은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체질을 타고난 것 같다. 그들은 우리 한반도처럼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침략근성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지 않은 운 좋은 사람들이다. 눈치를 살피는 시각적 감수성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정정당당하게 혹은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퉁명스러운 언어감각만 발달한 그들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눈치문화는 비언어(非言語)에 깊은 뿌리를 박았다.

 

 나는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는 우리 옛말을 아주 좋아한다.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서 자주 듣던 이 말은 매번 들을 때마다 비릿한 새우젓 냄새가 내 미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라. 절에 가서 눈치도 없게시리 "새우젓 좀 먹을 수 있습니까?" 하며 큰 소리로 물어보는 사람이라면 내게서 정신감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가? 그토록 상대의 체면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아뿔싸, 내가 바로 그 눈치 코치가 없는 당사자라면?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딱히 이 경우에 쓰는 영어 표현이 갑자기 떠오른다. -- I can take a hint! -- 나도 눈치가 있다!

 

© 서 량 2012.05.27

-- 뉴욕중앙일보 2012 5 3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