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32. 예언과 편견

서 량 2011. 5. 16. 08:52

 오사마빈라덴이 미해군 특수부대에 의하여 총살됐다는 보도가 며칠 전 지구촌을 들끓게 했다. 미국과 유대인을 향한 증오심을 평생 업으로 삼아온 빈라덴은 2001년에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을 파괴함으로써 2,7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9.11 사태의 지휘자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수 많은 유가족들이 크게 기뻐했음을 아무도 탓하지 못한다.

 

 '오사마(Osama)'는 아랍어로 '사자(lion)'를 뜻한다. 빈라덴은 시커먼 수염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발기불능에 시달리는 꼬지지한 사자 행세를 하며 파키스탄의 대저택에서 수 년간 최음제를 복용하며 지냈다 한다.

 

 'Islam'은 아랍어로 복종, 순종, 혹은 굴복(submission)이라는 말로서 알라신의 뜻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교리를 지칭한다. 빈라덴이 설립한 'al-Qaeda''기지(基地)'라는 투쟁적 의미를 내포하고 그들은 스스로의 테러리즘을 '지하드(Jihad: 성전: 聖戰: 성스러운 전쟁)라 미화시킨다.

 

 과격파 이슬람교도들은 이렇게 엄숙한 종교의 예복을 걸치고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사랑이나 자비심 같은 슬로건보다는 증오심의 실현을 위하여 자살폭탄을 짊어진 젊은이들이 옛 에덴동산 근처의 지축을 흔들고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1 1절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하는 첫 구절로 인류의 의식세계에 신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한문을 배우는 초보자의 필수 입문서로 기원전 4,5백 년 전에 제작된 천자문도 하늘 천(), 따 지()로 시작된다. 이렇듯 세상물정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과 땅이라는 양분법을 첫 번째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의 판단력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지혜로운 분별심에서 출발한다.

 

  해롤드 캠핑(Harold Camping)이라는 미국의 소문난 사이비 기독교인이 종말론을 들먹이며 며칠 후 2011 5 21일에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강림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있는 참이다. 엊그제 맨해튼에서 심판의 날을 알리는 커다란 포스터를 붙이고 질주하는 밴트럭을 유심히 보았다. , 당신은 어쩔 것인가. 차제에 구원을 받기 위하여 부랴부랴 캠핑 여행이라도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심판은 올바른 판단과 정확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12세기와 14세기 사이에 서구인들에게 'just(틀림없이)'라는 수식어며 ' justice(정의)'라는 명사가 생겼다. 원래 '바르게 말하다'라는 뜻의 'judge(심판하다)'도 같은 어원이다.

 

 13세기 말부터 쓰이기 시작한 '편견'이라는 뜻의 'prejudice'는 문자 그대로 중세 라틴어로 미리(pre) 내리는 판단(judicium)을 의미했다.  이쯤 되면 편견과 예언의 차이가 분명치 않다는 결론을 당신은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편견은 참을성 있게 사태의 귀추를 살펴보지 않고 당신이 성급하게 빠지는 선입관이다. 미리 내리는 판단은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의 나른한 안식처다.

 

 오사마빈라덴은 천당이라는 내세의 거주지에 입소하기 위하여 미국인들을 표적으로 삼은 살육행위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천당은커녕 '사자'라는 이름값도 하지 못하고 바다에 수장된 후 오바마 대통령은 "Justice is served: 정의가 집행됐다"라고 짤막한 논평을 내렸을 뿐이다.   

 

 예언자는 현재 대신 미래에 화제의 초점을 맞춘다. 예언은 편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거늘. 내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무궁한 삶의 축복을 외면한 채 신의 불길한 심판을 예견하며 지금 불안에 떨고 있다.

 

© 서 량 2011.05.15

-- 뉴욕중앙일보 2011 5 1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