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의 詩모음

가장 무거운 것 / 김종란

서 량 2022. 12. 21. 18:59

 

가장 무거운 것

 

                                 김종란

 

 

지하 이층 숨긴 둥지에서 깨어난 새끼 비둘기들

천진난만한 울음소리는 아침잠 묻은 채 오르내리던

지하 삼층 에스컬레이터 잠시 멈춘다

빛과 속도를 비행하며 내려와

지친 비둘기 한 마리 지하에 두고 간 노래소리

 

물밀듯 승객 빠져나간 지하철 통로에 남아

빨간 잠바에 흰 모자 깔끔하게 쓴 중국여인

광활한 우주에 무중력으로 뜬 채로

아직도 쉬지 않고 혼자 대화하고 있다

운행을 멈춘 별똥별처럼  명멸한다

 

잉크냄새 풍기며

하루는 발행되었으니

생명의 뒷문 열어 젖혀 맞바람 치는

한 켠 그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이야기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일어나 빠르게 걷는다

무거워진다

폐기되는 길 위에 지어지는 집

숭숭 뚫린 꿈과 기억을 눈물로 메운 집

가볍고 아슬아슬한 집들의 골목을

되짚어 가는 길은 가장 무거워

웃음소리 같은 밝은 노래 뒤따른다

 

© 김종란 201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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