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 (忙中閑)
윤영지
늦여름이 허리 펴고 드러누워 두 팔 기일게 늘이고
초가을의 문턱을 잡고 밀어붙이는 나른한 오후
날아드는 이름 모를 새, 파닥이는 깃털의 떨림이
한적한 오후 햇살에 얄팍한 파장을 일으킨다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서로 화답하며 바지런히
파아란 하늘에 선을 그린다, 고추 잠자리도 끼어
자음 모음만 덩그러니 뒹굴고 있어도
선율과 박자끼리만 닐리리 노닐고 있어도
색상과 구성만 현란히 나대고 있어도
한 옆구리 허전할 심경을 명쾌히 꿰뚫은
삼박자가 어우러진 우리들의 보금자리
잠시 들러 쉴 곳이 있어
목젖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옹알이를
횡설수설 풀어놓을 곳이 있어
뒷목 뻐근히 뭉친 근육을 나긋나긋
느슨히 늦출 곳이 있어
참으로 정겹고 고마운 자리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도 그리 볼썽사납지만은 않은
운치와 풍류가 흐른다 자족해본다.
2009.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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