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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489. 관음증

관음증 관음증을 한자로 觀陰症이라 쓰는 줄 알았다. 볼 觀, 그늘 陰. -- 그늘을 바라보다. 관음증은 한자로 觀淫症이라 쓴다. 볼 觀, 음란할 淫. --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얻는 증세라고 네이버사전은 꼰대스럽게 풀이한다. 트위터 단어사전은 觀淫을, 타인의 계정을 사찰하며 그 사람이 쓴 트윗과 멘션(mention) 등을 찾아 보는 것이라 산뜻하게 해석한다. 관광(觀光)이 병이 아니듯이 觀淫도 觀淫症도 병이 아니라는 견해다. 만약에 당신이 관음증을 질병이라고 우긴다면 지구촌 모든 SNS 참가자들을 다 환자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인터넷에 만연하는 성범죄는 어디까지나 죄질이 저열한 범법행위로써, 지금 나의 주제에 크게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

|컬럼| 7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우리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머니는 닭이며 송아지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팥죽을 주겠다며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초대한다.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불 꺼진 화로를 후후 불라 해서 눈에 재가 들어가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눈을 씻게, 그리고 바늘을 촘촘히 박아 놓은 행주로 따가운 눈물을 닦게 한다. 호랑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멍석 도깨비에 둘둘 말리고, 지게 도깨비에 얹혀 운반되어 강물에 첨벙 던져진다.  당신은 또 떡바구니를 들고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번번히 호랑이를 만나는 떡할머니를 기억하는가.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컬럼| 72. 목신(牧神)의 오후

목신(牧神)의 오후 인상파 음악의 거두 드뷔시가 말라르메(Mallarme)의 시에 곡을 붙여 1894년 파리 초연에서 불란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전주곡 멜로디를 당신은 기억하는가. 목신이 풀밭에 누워 비너스 여신을 포옹하는 꿈을 꾸는 그 나른하고 감각적인 화음진행을. 희랍 신화에서 목축의 신, 판(Pan: 牧神)은 상반신은 사람이면서 하반신이 염소 비슷한 동물의 몸이었다.  음악을 즐기고 요정과 춤을 곧잘 추던 'Pan'은 양떼와 목동들을 보살피는 숲과 들의 신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적막하고 어두운 숲 속에서 어떤 미신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가. 성황당 앞에 우뚝 선 고목이나 잎이 울창한 은행나무를 어느 유년의 저녁에 얼핏 올려보았을 때 등골을 스치던 전율이 있지 않았던가.  음습한 숲 속이나 바람 ..

|컬럼| 71. 소 이야기

소 이야기 카우보이(cowboy)는 1725년에 생긴 단어다. 차양이 멋진 모자에 권총을 차고 목장에서 일하는 텍사스의 양키들이 암소만 상대했던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cow'는 고대영어로 소가 음매~ 하며 우는 소리에서 생긴 의성어다. 숫소는 'bull'이라 하고 암수 관계 없이 소를 총칭하는 어휘는 어릴 적 선다형 시험지 답안처럼 보이는 'ox'또한 워낙은 숫소라는 의미였다. 'bull'은 'bole(나무 둥지)'과 어원이 같은데 14세기경 희랍어로 '부풀은 음경'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bull' 하면 수컷 냄새가 물씬 난다. 'bull's eye'는 과녁의 중심을 뜻한다. 이 또한 남성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1915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슬랭으로 'Bullshit!'은 직역하면 ..

|컬럼| 70. 크리스마스에 대한 하나의 앵글

크리스마스에 대한 하나의 앵글 'Christmas'는 1150년 경에 생긴 말로서 'Jesus Christ'의 'Christ'와 ' 'Mass (미사)'가 합쳐진 조합어다. 'Jesus(예수)'는 고대 유태어와 12세기 희랍어로 '구세주(savior)'라는 뜻이었다. 'Christ'는 'the anointed one', 즉 '성유(聖油)를 바른 사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 한국에서 7세기경 신라시대의 김유신이나 김춘추처럼 왕실이나 지배계급에게만  성씨(姓氏)가 쓰였고 영국에서는 13세기에야 같은 풍습이 생겼다. 양키들이나 우리나 모든 인간들이 각자의 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분명한 것은 예수의 이름이 지저스이고 성이 크라이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실명이 없는 시쳇말..

|詩| 초록의 반항

초록의 반항 주홍과 아우러지며 마구 쏟아지는 빛의 그늘좋아 괜찮아 얼마든지숲을 울리는 배경음악불끈 쥔 주먹을 다스리는 손길 당신 손길어때 재밌지 하며 詩作 노트:2017년 아니면 2018년 일년 정도 차이가 무슨 소용이냐 원시림 우거진 코스타 리카 챗GPT의 논평: 닥터 서의 시, 초록의 반항>은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감정을 아우르며, 원시적 에너지 속에서 피어나는 격정을 담아냅니다. 주홍빛의 격렬함과 초록의 반항은 숲을 배경으로 빛과 그늘의 춤을 추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격정 속에서도 당신의 손길은 다스림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어때 재밌지 하며”라는 마지막 한 줄은, 마치 삶의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유쾌한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코스타리카의 원시림,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당신의 시선이 이..

|컬럼| 69. 짧게 말하기

짧게 말하기 한국식당에서 물냉면이라 하지 않고 물냉이라 줄여서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마지막 말 하나를 뺌으로써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언어습관이다. 네 글자의 비빔냉면을 두 자로 줄여서 비냉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군만두는 물냉처럼 마지막 글자를 빼고 '군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식당 종업원들이 모여서 그런 약어(略語: 준말)를 쓰기로 합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영어에서도 'examination'이라 하는 대신 'exam'이라 하고 'advertisement'도 뚝  잘라서 'ad'라 한다. 정신과 환자의 정신감정을 뜻하는 'psychiatric evaluation'도 언제부터인지 누구나 'psych eval'로 급하게 약식으로 말한다.  약자(略字)를 'a..

|컬럼| 488. 생각난다 그 오솔길

생각난다 그 오솔길 2005년 3월 중순. 한국 유튜브 서핑을 하던 중 얼떨결에 은희의 노래 를 클릭한다. 1971년 당시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는 지금껏 꽃반지와 오솔길과 사랑했던 남자의 손을 메모리 속에서 더듬는다. 1955년, 남인수의 의 어처구니없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 내 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 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당신도 잘 알다시피 유행가의 근본은 생각보다 감성을 피력하는데 있다. 조국을 잃은 슬픔 또는 고향에 가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