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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486. 이중장부

이중장부 우리는 이중장부의 삶을 산다. 하나는 내면세계(internal world), 다른 하나는 외부현실(external reality)을 기록한다. 전자를 ‘private life’, 후자를 ‘social life’라 부른다. 오래 전 수련의 시절. 피부가 뽀얀 입원환자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스무 살 좀 넘은 그녀는 자기가 당시 미국을 휩쓸던 영화 ‘Love Story’의 여주인공이라는 망상을 호소한다. 저를 영화 속 음대생 제니라 불러달라 요구한다. 세션마다 자신과 하버드 법대생 올리버와의 뜨거운 사랑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그녀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럽다. 지도교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받아드리며 계속 듣기만 하라 한다. 나는 그의 충고를 실천에 옮기며 나도 모르게 환자가 정말 제니라고 ..

|컬럼| 49. '당나귀'와 '궁둥이'

'당나귀'와 '궁둥이' 'ass'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당나귀'라는 뜻이고 두번 째는 'arse'라는 비어(卑語)가 변한 말로 '궁둥이'라는 뜻. 'arse'는 혀를 꼬부려서 발음하기가 힘이 들어 'ass'로 와전돼 버린 말이다.일부 언어학자들은 이 두 번째 궁둥이라는 뜻도 당나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착각을 한다. 당나귀!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연상작용이 그 거대한 엉덩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ass'와 'arse'는 엄연히 다른 말이었는데 양키들이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사이에 '당나귀'가 '궁둥이'로 변한 것이다.이 말을 당나귀들이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당나귀건 사람이건 한 어엿한 생명체를 궁둥이와 동일시 하는 것은 동물애호와 박애주의 사상 차원..

|컬럼| 48. 도시의 질서

도시의 질서 당신은 경찰(警察)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는가. 참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한자. '깨우칠 경', '살필 찰'. 그러니까 경찰은 깨우치면서 살피는 사람이다. 경찰을 영어로 'police'라 한다. 이 말은 15세기 경 희랍어로 '도시'라는 뜻이었다가 19세기에 현대적 의미의 '경찰'로 바뀌었다.  폴리스는 아직도 미국의 도시 이름들 중에 인디아나주의 수도 'Indianapolis'나 미네소타주의 수도 'Minneapolis' 같은 도시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태리의 경치 좋은 도시 나폴리도 폴리스와 어원을 같이한다. 경찰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평화로운 농촌에 무슨 경찰이 필요하겠는가. 도시(都市)의 '도읍 도'에는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

|컬럼| 47. 남남북녀 유감

남남북녀 유감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다.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가 좋다는 뜻.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남쪽 여자들과 북쪽 남자들은 깊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다.북쪽 사람들은 태양광선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여 피부가 하얗다. 북유럽인들의 희디 흰 살결을 눈에 그려 보면 금방 알 것이다. 반면에 햇살이 풍족한 남쪽 사람들은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처럼 살결이 가무잡잡하리라. 남남북녀의 이치를 이렇게 피부학적으로 해석하면 여자란 모름지기 얼굴이 달처럼 하얗고 남자는 바위처럼 검어야 좋다는 편견에서 온 속담이 아닌가 싶다.해는 동쪽에서 뜬다. 아침해는 무거운 몸을 잠시 나뭇가지에서 쉬었다 간다. 그래서인지 동녘 동(東)은 나무 목(木)에 해(日)가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지..

|컬럼| 46. 왕과 나

년 전에 한국에서 라는 영화가 히트를 치더니 요사이는 티비 연속 드라마 가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때 ‘왕’은 임금님을 뜻하지만 우리 속어에서는 크기가 크거나 정도가 대단한 상황을 지칭하기도 한다. 왕만두, 왕거미, 왕소름, 왕짜증, 왕겨, 왕따 같은 말들이 그 좋은 예다. 육이오 사변 때 미군들이 만들어 낸 슬랭 ‘honcho(우두머리)’는 우리말의 ‘왕초’를 양키식 발음으로 한데서 왔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왕초는 똘마니의 반대말.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왕(王)을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래 위로 관통하는 존재라고 추상적인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왕이 원래 도끼의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왕(王)이라는 상형문자를 찬찬히 살펴보면 정말 도끼처럼 보이는 것을.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컬럼| 45. 야구공과 불알의 차이

야구공과 불알의 차이 영어 숙어에 야구선수가 공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on the ball'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이 초롱초롱하다는 뜻이다. 미국에 처음 와 뉴저지에서 수련의를 할 때 어느 여자환자가 정신이 멀쩡하다는 뜻으로 'She is on the ball'이라고 하는 대신에 'She is on the balls'라 했다가 회진 도중에 병실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balls'는 속어로 불알이라는 의미였으니 그 여자환자가 남자 아랫도리를 올라탔다는 말이 된 것이다. 양키들이 불알을 ‘balls’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경이었다. 해부학적으로 고환은 둘이기 때문에 꼭 복수로 쓴다. 'ball'은 원래 둥근 물체를 뜻했다.  'balloon(풍선)'도 같은 뿌리에서 ..

|컬럼| 44. 여자와 와이프

여자와 와이프 한국 티비에서 2007년 연속 드라마를 총정리 하기를 올해는 '불륜'이라는 주제가 단연 압도적이라는 결론이다. 요사이는 무슨 드라마를 보던지 맨날 부부간에 한쪽이 혹은 쌍방 다 바람을 피우는 테마가 판을 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wife(아내)'와 'husband(남편)'의 어원을 조사해 봤다. 'wife'는 고대영어에서 'wif'라 했는데 '여자'라는 뜻이었다. 발음이 매우 비슷한 고대 언어 북구의 'vif'와 독일어의 'Weib'도 단순히 '여자'라는 말이었다. 당시 양키들 사고방식으로는 세상 모든 여자들은 자기들의 와이프였다는 이론이 너끈히 성립된다. 언제부터 'wife'가 현대의 '아내(妻)'라는 뜻으로 자리잡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다부다처제(多父多妻制)의 풍습이 일부일..

|컬럼| 43.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 캐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걱정을 잘하는 기질을 타고 난 사람에게 잔 신경 쓸 것 없이 인생을 대범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비양대는 말이다. 사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걱정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 해결이 되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Care killed the cat(걱정이 고양이를 죽였다.)’라는 영어 속담이 명시하듯 쓸데 없는 걱정은 몸에 해로운 법.’care’와 ‘charm(매력)’과 크리스마스 캐롤의 ‘carol’이 같은 뿌리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당신은 얼른 수긍이 가겠는가.고대영어에서 한 때 ‘care’는 ‘karo’ 또는 ‘chara’라 했는데 이 말은 그 뜻 중에 ‘시끄러운 소리’라는 뜻도 있었다. 11세기 이전의 고대 고지(高地) 독일어로 ‘chara’는 ‘통곡하다’, 소위 ..

|컬럼| 42. 웃기는 짬뽕

한국 티비에서 자꾸 '멘트(ment)'라는 말을 듣는다. '진술'이라는 의미의 'statement'의 끝부분을 덜렁 떼어온 토막영어다. 인사말을 '오프닝멘트'라 하고 맺음말을 '엔딩멘트'라 한다.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다. 술을 '쭉 마셔라' 하는 우리의 '원샷!(One shot!)'은 '주사 한방'이라는 뜻. 멀쩡한 사람에게 싸움을 부추기는 일본식 영어 '화이팅!(Fighting!)'도 영어가 아니다. 양키들의 'cell phone'을 우리는 '핸드폰'이라 한다. '손전화'라니? 발로 거는 전화도 있는가. 우리는 영어를 가래떡처럼 석둑석둑 잘라서 쓴다. '리플'은 'reply'에서 끝부분을 떼어먹은 것. 컴퓨터를 '컴'이라 하고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에서 글자 넷을 죽인 말. '니고시에이션(n..

|컬럼| 41. 칠면조 유감

칠면조 유감 칠면조(七面鳥)! 하면 어딘지 이국적이고 로맨틱하게 귀에 들어온다. 새는 새인데 일곱 개의 면이 있다니. 프리즘 렌즈가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빛의 조화가 눈에 선하게 떠 오르지 않는가. 1541년과 1555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뉴기니(New Guinea)에 서식하던 야생조(野生鳥) ‘turkey’를 폴투갈 사람들이 미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아세아의 실크로드(silk road)가 유명해졌듯이 그들이 터키를 몰고 가던 땅이름이 나중에 터키라는 국가 이름으로 변했다 한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봐요. 어찌하다 나라 이름이 날짐승 이름이 됐는가. 우리나라 이름이 ‘꿩’이나 ‘닭’이라는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월드컵 축구경기 응원할 때 저 귀에 익은 ‘대~한민국’ 대신에 ‘꿩~민국’ 혹은 ‘닭~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