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love or money'라는 표현은 사랑이나 돈의 힘으로도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을 암시하는 관용어다. 'I cannot stop for love or money' 하면 세상 무슨 힘으로도 나를 결코 막지 못한다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1939년 일제 강점기 시절 '홍도야 울지 마라'를 주제곡으로 히트를 친 우리의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아마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우리의 심금을 울린 연극은 사랑과 돈을 거부하는 서구적 자율성과는 정반대로 사랑과 돈의 불쌍한 희생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작금의 지구촌은 사랑의 갈등보다는 돈을 위한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스가 파산 직전에 놓였다는 보도로 전세계가 불안에 떨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 양키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불만 때문에 뉴욕의 금융가에서 대규모의 데모를 벌이는 중이다. 그렇다. 사랑 따위로 전인류가 이렇게 한꺼번에 들썩거리지는 않는다. 종족보존을 위한 사랑보다 개체보존의 수단인 돈 문제가 훨씬 더 다급한 실정이다.
'Money does not grow on trees'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라는 싱거운 뜻이다. 반면에 우리말로 '땅을 파봐라. 땡전 한푼 나오나!' 하면 아주 짭짤하게 귀에 들어온다. 똑같은 비유를 해도 양키들은 나뭇가지에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돈을 연상하고 우리는 삽으로 땅을 파서 돈이 나오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 매우 대조적이다. 이것은 즉 양키들은 돈을 겉으로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우리는 땅 속 깊이 감춘다는 집단의식의 차이일까.
돈의 위력에 대하여 동서양은 의견을 같이 한다. 우리에게는 '돈이면 처녀불알도 산다'는 구질구질한 속담이 있지만, 'Money talks'라는 지극히 짧은 영어 격언도 만만치 않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에 'You pays your money and you takes your choice!'라는 말이 있다. 문법에 어긋나게시리 2인칭동사에 's'를 붙인 이상한 표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고심하다가 결국 '돈을 내고 나면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로 옮겨 보았다. 이 묘한 말은 1846년에 이미 영국에서 시작된 표현으로서 문법에 틀리게 말해야 감칠 맛이 난다. 일단 계산이 끝나면 물릴 수 없다는 설명을 일부러 무식하게 들리게 하는 말투다.
'재정'이라는 의미의 'finance'는 중세 불어로 '끝맺음' 또는 '청산(淸算)'이라는 뜻이었다. 교향곡이 끝나는 부분인 '피날레'와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final'도 'finance'와 말의 뿌리가 같다. 일을 끝낼 때 손익계산을 해서 재정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우리 속어로 '끝내준다'는 표현 또한 속이 시원해지는 비유이거늘 이를테면 돈으로 어떤 상황을 깔끔하게 끝내주는 것이 자본주의식 결론일지어다.
'기금'이라는 뜻의 'fund'도 마찬가지다. 라틴어의 'fundus'에서 유래한 이 점잖은 단어는 워낙 '바닥(bottom)' 혹은 '기저(基底)'라는 의미였다.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야 말로 바닥난 지구촌 재정위기를 구제하는 기본방침이 아니던가.
우리는 '장사 밑천'이라는 말을 쓴다. 영어로 'business fund'다. 이때 '밑천'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의 합성어로서, '밑+전(錢)', 즉 '밑돈'을 일컫는다. 그리고 또 '밑천'은 남녀의 아랫도리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업도 남녀관계도, 에헴, 그 밑천이 든든해야 하느니라.
© 서 량 2011.10.10.02
-- 뉴욕중앙일보 2011년 10월 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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