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40. 가을을 위한 합창

서 량 2011. 9. 19. 13:19

 며칠 전 뉴저지의 한 내과의사 집에서 열렸던 소프라노 홍혜란의 비공식 독창회를 잊지 못한다. 201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그랑프리 수상자다운 깊은 감동의 물결이 있었다.

 

 'soprano'는 라틴어로 '높은 목소리'라는 뜻이었고 현대영어 'super'의 근원이었고 원래는 높거나 특출하다는 의미였다.

 

 'super'라면 얼른 떠오르는 말이 'superman'이나 아파트 관리인을 의미하는 'superintendent' 따위가 있다. 그리고 바쁜 직업 여성으로서 아이들도 남 못지 않게 착실하게 보살피는 능력 있는 어머니를 요사이 'super mom'라 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supermarket' 20세기 자본주의 시민의 필수조건이다.

 

 1999년부터 8년 좀 넘게 미국 유료채널 'HBO'에 방영되었던 'The Sopranos'를 기억하는가. 뉴저지의 마피아 일가 소프라노는 한 이탈리아 가족의 성()씨였다. 그 의미로 보아 한국 성으로 치면 '높을 고'자 고()씨에 해당된다.

 

 높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가에서 갑남을녀들이 천상을 기리는 심사를 토로하는 것일까. 고려(高麗)의 정기를 이어받은 우리는 살아생전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입사시험에 높은 점수로 붙어서 사회에 공헌하는 높은 사람이 될지어다.

 

 맹인 목사가 영혼의 눈을 뜨는 이청준의 장편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는 어떤가. 기독교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소설은 그 제목의 겸허한 분위기 또한 당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것이다. 작가는 심안(心眼)을 뜨기 위하여 실명하는 성직자의 아픔과 고행을 묘사한다. 이청준은197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서편제'에서도 딸이 판소리의 장인으로 득음(得音)하는 과정을 위하여 우선 그녀의 눈을 멀게 하는 아비의 비정한 교수법을 그린바 있다. 그는 높은 곳에 가거나 높은 음정을 터득하기 위하여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인간상을 확대 조명한다.     

 

 'bass' 12세기에 고대 불어로 'bas'라 했고 '기본'이라는 뜻이었다. 14세기 말에 라틴어의 'bassus'는 사회적으로 계급이 낮고 비천하다는 의미였고 나중에 현대어의 'bass: 낮은 소리'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기본적인 것과 낮고 비천한 것이 같은 말이었다니? 이상하도다. 민심이 천심이라, 사회의 기본원칙은 고위층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류계급에 뿌리를 박는다는 지론인가.

 

 천상의 소프라노와 지하의 베이스 사이에서 알토와 테너가 합창의 오묘한 음향을 더욱 더 도드라지게 한다. 'tenor'는 라틴어로 '붙잡다; 유지하다'라는 뜻의 'tenere'에서 생긴 말로 사중창에서 지속적인 음을 내는 역할을 담당했고 같은 어원에서 'tenure: 대학교수의 종신제도', 'tenacity: 끈기' 같은 추상명사들이 탄생했다.

 

 알토는 워낙 피치가 높은 남자 목소리를 뜻했는데 여자의 낮은 목소리를 지칭하는 'contralto'와 엄밀히 구별되었다. 게다가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alto'는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의 'old'와 말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당신은 어쩐지 남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목소리가 소프라노에 가까워진다고 느낀 적이 있지 않았던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가을에 하늘이 더 높아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다가올 겨울에 대한 긴장감으로 에라, 모르겠다며 나이 든 남자가 목젖을 조여 염원하는 저 높은 곳이 주는 착시현상일까. 베토벤 합창 교향곡 4악장에서 당신이 듣는 소프라노와 알토와 테너와 그리고 낮은 데로 임하는 베이스와의 화음진행일까.  

 

 

© 서 량 2011.09.18

-- 뉴욕중앙일보 2011 9 2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