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15

|詩| 삼각관계

삼각관계 대화는 늘 여럿이 하는 데서 끝나는 법 손을 흔드는 것도 화법인데요 초록 파도에 표류하는 열 발짝 안짝 크기 타원형 섬 여자 둘 남자 둘 중 연신 떠들어대는 사람은 나 혼자다 詩作 노트:Cross Westchester Expressway 8번 출구를 빠져 잠시 후에 들어간 PurchasePepsiCo Garden.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두 여자 조각들과 많은 말을 나눴다.    © 서 량 2024.07.01

*빗방울 전주곡 / 김종란

*빗방울 전주곡 김종란 피아노 음 빗방울 툭툭 맺히듯 마음 텃밭에 숲에 번지며 목덜미에 스미는 음악의 온도 먼 발치에 숲 속의 노루인가 어느덧 시야를 가로막는 만개한 작약 반쯤 열린 외따른 방에서 유려한 오월이다 눈빛 푸르게 깊어지는 짙은 이끼 빛으로 빛을 반사하는 물 연못 들릴 듯 말 듯한 숨소리 짧은 여행을 떠나면서 기차안에서 펴보는 화려한 손수건 라일락 교보문고 앞의 라일락 김유정 문학관의 라일락 깃들고 싶다 초록의 불길과 소리 사물과 건물과 형제와 자매와 한 영혼인 듯 불현듯 가까웠던 이상과 김유정 향기만으로 깃들어 발등을 비추는 등불 문학의 꿈속을 지나며 초록의 불길과 번개가 겹치는 절벽과 파도와 먼 갈매기가 나르는 등대가 보이는 섬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시작노트: 비를 머금은 바람, 흔들리는..

바다 도서관 / 김종란

바다 도서관 김종란 잡은 것은 갈매기 깃이다 깃과 가슴의 흰빛 들여다보다 깜빡 종아리까지 파란 물이다 바닷물에 잠길 듯 떠있는 의자에 앉아 페이지 후르륵 넘긴다 빌딩 그늘 지나는 겨울 전차 소리 넘긴다 끝 여름 하얗게 불붙는 미루나무 울음 소리/ 깃을 들여다본다 눈 지르감다 깃을 덮는다 파란 물에 넘실대며 떠있는 의자 도서관 문은 임의로 잠기며 흰 갈매기들만 파도를 스치며 날아오른다 © 김종란 2013.10.07

푸른빛 나는 분홍 / 김종란

푸른빛 나는 분홍 김종란 유리병에 기대어 흰 장미가 만개했어요 바라보니 흰 장미 곁 푸른빛 나는 분홍 어른거려요 큰 언니 더 이상 많이 웃고 얘기 안 해도 돼요 코너에서 사람 바라보기 좋아서 사람 참 좋은 것이라 날려 다니다 잠시 멈춰진 구겨진 종이쪽 빗물이 조금 담긴 빈 소주병처럼 반쯤 그늘진 벽에 아무도 모르게 앉아 세월의 바람소리에 추임새를 넣고 있었죠 언니가 수 놓은 시간 아무도 모르게 흐르죠 절벽을 지나 푸른 강물을 지나 바다에 들었네요 파도 한 자락으로 솟구치며 망망대해, 언니 © 김종란 2012.06.11

|詩| 새벽 커피 컵

환한 전등 아래 다 마신 커피 어둑한 커피 컵 속 대천해수욕장은 내 영혼의 어린이 놀이터 여럿이 우와 소리치며 타는 커다란 파도 파라솔 모래사장 하늘색 줄무늬 물색 커피 컵 옆 회색 가정용 전자혈압계 *LCD 표시판 널브러진 뭉게구름 하루에도 몇 번씩 눈감고 찾아가는 곳 파도 소리 우람한 햇살 아래 해맑은 대천해수욕장은 *Liquid Crystal Display - 액정(液晶) 표시장치 시작 노트: 새벽마다 혈압을 재는 습관이 생겼다.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서 이거 참 재미있는데, 하는 일정이다. 혈압이 좀 높다 싶으면 10초, 20초 눈을 감고 11살 때 처음 갔던 대천해수욕장을 눈에 생생하게 그리고 나서 다시 재면 혈압수치가 10, 20, 드물게는 30 정도 뚝 떨어진다...

2022.01.06

|詩| 대충 하고 싶은 말

파도가 넘실대면 머리에 빨강 노랑 초록 풍선을 얹은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친다 아, 파도를 타요 꿈이 넘실거려요 자꾸만 이제 네이비 블루 아늑한 아다지오 템포 엄청난 오징어가 헤엄치는 바다 밑 세상 누군가 속삭인다 – Yes, it is what it is! 응, 그건 있는 그대로야! 오징어가 먹물을 뿜는 바다 밑 세상 온갖 생물들이 움직이고 있어 침착하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그들이 코끼리 귀만 한 날개를 펄럭이며 지금 바다를 탈출하고 있다는 거 © 서 량 2021.10.07

2021.10.07

|詩| 바다의 음향장치

입술 잔주름 실핏줄이 바닷바람을 부른다 입술은 참 민감해 누가 스피커를 꺼 놓았을까 입술만한 크기의 잎사귀가 넘실거려요 저 멀리 육지가 올리브색으로 가물거려요 당신은 한쪽 눈을 감은 채 영상을 찍는 중 거무튀튀한 조각배 하나가 파도를 무마시킨다 숨이 막히도록, 숨막히게 당신이 먼저 바다를 그리워하지는 않기로 했지 입술만한 크기의 잎사귀가 네이비 블루 바다를 짐짓 제압하는 가운데 © 서 량 2021.04.30

2021.04.30

|詩| 꿈꾸는 벽시계

벽이 시계와 밀착한다 해변의 추억이 뒤집힌다 파도가 인다 지금은 밀착의 시각 시계의 꿈이 일그러지고 있었어요 시간이 신음한다 웃음을 터트렸어 꿈은 전생의 찌꺼기임이 틀림없대 시간은 마호가니 프레임 안팎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성이는 외로움이래요 파도가 죽는다 바닷물이 참 따스해 당신은 내 응접실에 안치된 마호가니 프레임이다 종일토록 하릴없이 뎅~ 뎅~ 종소리를 토해내는 © 서 량 2021.04.16

2021.04.17

|詩| 나는 3연음을 사랑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느린 3박자를 마다하고 로코코 스타일 숨 가쁜 왈츠로 한쪽 맨살 어깨가 기우뚱하더라도 찻차차 찻차차 슬로우 록 발라드 풍 3연음 날갯짓이 좋기는 해요 근데 아주 빠른 8분의 6박자 워싱턴 포스트 마치에 처그적 척척 처그적 척척 나랑 발 맞추어 나란히 꼿꼿하게 걸어가는 건 어때요 겨울 해변도 괜찮아 3연음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더 심해지는구나 하고 느끼기가 무섭게 더 세차게 달려드는 파도를 눈을 반쯤 감은 채 그윽이 바라보더라도 우리가 © 서 량 2020.01.11

202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