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증 9

|컬럼| 211. 어미 탓이라고?

1940년대 후반에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정신분열증이 생긴다는 학설이 떠돈 적이 있었다. 마치도 한 국가의 모든 잘못된 일이 다 대통령 책임이라는 소견과 비슷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터무니 없는 주장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당했던 그 당시 분열증 환자 어머니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품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정신질환은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을. 1950년대에 어떤 가정의 환자가 정신병원에 자주 입원을 하느냐는 연구가 영국에서 활발해졌다. 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모나 배우자하고 함께 살면 형제자매와 같이 지내거나 공공시설에서 거주하는 경우보다 훨씬 자주 증상이 재발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된 연구과제였다. 가족들의 감정표현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환자의 입원빈도가 증가한다는 것이 영..

|컬럼| 455. 문 닫고 지내기

문이 있고 통로가 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잔디밭 돌길. 문이 반쯤 열려 있는 서재를 지나 반들거리는 복도가 부엌에 이른다. 문은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칸막이를 상징한다. 문은 외부자극을 차단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오피스 문을 닫은 채 직장이나 연구실에서 열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추구하는 작업에 심취하여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지는 과학자나 예술가들은 남과 소통하고 싶은 기색을 도통 보이지 않는다. 페이퍼워크가 산더미로 쌓인 병원에서 컴퓨터를 두들기는 중 전화가 온다. 오래 소식이 없던 친구가 어떻게 지내냐 묻는다. 야,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자폐증상, autistic symptom’이 도지는 것 같다, 하며 농담을 내뱉는다. 현대인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다. ..

|컬럼| 384. 비겁한 처방

입원환자 약의 복용량을 놓고 다른 정신과의사와 회의석상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의사들의 처방습관에도 어쩔 수 없이 각자각자의 성격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토론이 논쟁으로 변한다. 약의 효능보다 부작용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변론이 나온다. 어차피 아무리 약을 써도 증상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 것이 ‘정신분열증’이니까 아예 미리부터 약의 부작용이나 방지하자는 속셈이 내보인다. 적극적으로 병의 증세를 호전시키는 약물투여는 관심 밖이다. 나는 2010년부터 한국에서 통용되는 ‘조현증’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못하다. 사람 뇌의 신경구조가 현악기가 아닌 이상 조현(調絃)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올들어 어느덧 46년째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정신분열증이 뇌질환이라는 단정을 내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환자의 두뇌장애..

|컬럼| 332. 통찰력

‘insight’는 사전에 ‘통찰력’이라 나와있다. 지금껏 이 정신의학 용어를 ‘안식(眼識)’이라 우리말로 옮기면서 나는 미국에서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참이다. ‘insight’는 통찰력이라 하지 않고 ‘속 모습’, 혹은 유식한 한자로 ‘내부시력(內部視力)’이라 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만의 속 세상이 있다. 수박 겉핥기 식의 껍데기보다 숨겨진 진실이 더 중요한 사람들에게 ‘insight‘를 ‘속 모습’이라 옮기면 훨씬 좋은 번역이 아닐까? ‘in(속)+sight(모습)=참 모습’이라는 등식이 너끈히 성립된다. ‘insight’에 대하여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듯 환자들에게 대화식으로 강의를 했다. 인사이트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이라고 내..

|詩| 제이에 대한 진단소견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했을 때 제이는 젊은 나이에 역사의식도 국가의식도 없었다 제이는 감회가 새롭다 한 국가의 대통령도 너무 똑똑하면 제 명에 못 죽지 예순 살 독신남 백인 제이는 지난 4년간 뉴욕지역을 돌아다니며 자기가 몰고 다니는 낡은 승용차 안에서 살다가 지난 겨울 혹한을 견디지 못해 뉴욕 북부 한적한 병원 응급실에 출두하여 자살을 하겠노라고 심각하게 우긴 후 정신과 병동에서 2주 동안 지내고 요새는 부랑자 수용소에 투숙하고 있다 제이 아버지는 15살에 벨지움에서 혼자 배 타고 이민 와서 맨해튼에서 무지막지하게 성공한 보석공 제이 할아버지는 벨지움에서 내노라 하는 뇌수술 전문 외과의사 제이 어머니는 일찍이 장출혈로 죽은 요염한 술꾼 세 살 터울 금발의 여동생은 근력 좋은 흑인 정신분열증환자와 결혼..

발표된 詩 200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