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후반에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정신분열증이 생긴다는 학설이 떠돈 적이 있었다. 마치도 한 국가의 모든 잘못된 일이 다 대통령 책임이라는 소견과 비슷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터무니 없는 주장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당했던 그 당시 분열증 환자 어머니들에게 깊은 동정심을 품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정신질환은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을.
1950년대에 어떤 가정의 환자가 정신병원에 자주 입원을 하느냐는 연구가 영국에서 활발해졌다. 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모나 배우자하고 함께 살면 형제자매와 같이 지내거나 공공시설에서 거주하는 경우보다 훨씬 자주 증상이 재발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된 연구과제였다.
가족들의 감정표현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환자의 입원빈도가 증가한다는 것이 영국인들이 내린 결론이다. 유전도 유전이지만 일단 정신질환이 발병한 후에는 환경적 요소가 제일 중요하다는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거론된다.
(1)Hostility (2)Criticism (3)Overinvolvement
부모나 배우자가 사람을 달달 볶는 생활환경이 형제자매와의 느슨한 동거보다 한층 더 고달픈 인생이다. 위의 3대 악조건을 (1)못마땅함 (2)헐뜯기 (3)지나친 간섭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원칙은 정신과 환자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1)'Hostility (못마땅함)'는 적의(敵意)라는 뜻이지만 놀랍게도 'hospital (병원)'과 'hotel (호텔)'과 'host (손님을 접대하는 주인)'와 같은 어원이다. 'host'는 고대 불어로 군대라는 말이었고 중세 라틴어로 외국사람이라는 뜻도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을 적으로 취급했고 'hospitality (친절한 대접)'에는 어원학적 적대감이 숨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식의 결혼 상대를 한사코 거부하는 부모들의 적대심도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고깝잖은 말투도 다 서로간 못마땅해 하는 심리의 발로다.
(2)'Criticism (헐뜯기)'은 중세 불어와 라틴어에서 심판한다는 뜻이었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crisis (위기)'는 원래 희랍어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비평의 달인들이다. 누구나 정치 평론가, 논설위원, 스포츠 해설가, 음악 비평가, 음식감정사 그리고 문학작품 심사위원이다.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비평하는 우월감을 추구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남에게 늘상 잔소리하는 습관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3)'Overinvolvement (지나친 간섭)'는 거의 우리말이 된 '오바'와 라틴어 'involvere'의 합성어로서 과도하게 안쪽으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남들의 속마음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심리행각이 우리 애정 어린 간섭 위주의 삶이다.
장기 훈수는 뺨 맞아가면서 한다더니,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묵살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어느 파티석상에서 한국의사가 친구 딸 신혼신부의 배를 쓰다듬으며 "빨리 애를 하나 낳아야지" 하며 뇌까리던 장면이 기억난다. 친구를 만나 대뜸 왜 그리 살이 쪘냐고 첫마디를 던지는 체중감별사도 보았고 그새 폭삭 늙었구나 하며 자연스레 내뱉는 악담 아닌 악담도 듣는다. 이것이 우리의 흉허물 없는 간섭 혹은 헐뜯기 정신이다.
전 국민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한국 언론 또한 적대감과 비판의 화신으로 군림한다. 눈앞에 사람만 얼씬하면 사과를 강요하고 사퇴를 촉구하는 정성 어린 충고도 마찬가지다. 삶으로부터 자진사퇴 하는 행동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우리의 정신상태가 도무지 놀랍지가 않다.
© 서 량 2014.06.29
-- 뉴욕중앙일보 2014년 7월 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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