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58. 악마 길들이기

서 량 2016. 4. 18. 03:47

루시(Lucy)라는 40대 중반의 백인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스무 살 갓 넘어 신과 악마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리는 환청 증세가 시작된 그녀는 그들이 내리는 명령을 들으며 살아가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현재 내 병동에 입원 중이다.

 

악마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목 졸라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녀의 언니 가족에게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협박한다. 루시는 언니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간호사와 다른 환자들의 목을 조르는 시도를 자주 한다. 내게도 벌써 몇 번을 덤벼들었다. 다행히 그녀의 행동이 굼뜨고 느리기 때문에 지금껏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직원들간에 '교살자(strangler)'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녀!

 

나는 루시에게 환청이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환청도 꿈도 제작자(producer)가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일깨워 주려 한다. 물질주의자들에게 유심론을 피력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환청도 꿈도 아무리 생생하다 하더라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극구 강조한다.

 

'Lucy'는 나폴리 민요 '산타 루치아(Santa Lucia)', 즉 라틴어 성녀(聖女) 이름 'Lucia'의 영어 이름이다. 'lucia'는 밝은 것, 빛이라는 뜻이다. 억지를 부리며 루시나 루치아를 우리말로 옮기면 '밝을 명()'이 들어간 여자 이름 명자(明子). 산타 루치아는 '성녀 명자'!

 

당신은 옛날에 천사 중에서 똑똑하기로 소문 났던 '루시퍼(Lucifer)'가 신에게 대항하여 앙심을 품고 지옥으로 타락하여 악마가 됐다는 구약성경의 기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사야 14 12) 그때부터 'Lucifer'는 악마라는 뜻 말고도 밝은 것, , 샛별이라는 의미로 통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지막지한 혼동을 불러일으키는데 대하여.

 

피부색이 열대어처럼 밝고 투명한 루시는 매우 인간적인 여자로 보인다. 역경을 거부하는 인간의 본능으로 그녀는 요즈음 악마에게 몹시 저항한다. 나는 그녀에게 악마 루시퍼 또한 루시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입에 침을 튀기면서 피력한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저 뼈저린 원칙,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추종하는 어설픈 불교신자 티를 감추지 못하면서.

 

한 백 년 전 20세기 초엽부터 꿈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온 'lucid dream'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묵직한 한자어로 자각몽(自覺夢)이라 하는데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꾸는 꿈을 뜻한다. 'lucid'는 사전에 '명쾌(明快), 명료(明瞭)'이라 명시돼 있으면서 루시, 루치아, 샛별, 악마와 말뿌리가 같다는 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

 

자각몽에 대하여 평생 연구하면서 근래에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세인들을 교화시키고 있는 스탠포드(Stanford) 대학 신경생리학 박사, 스피븐 라버지(Stephen LaBerge)를 우연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lucid dream'의 세계적 권위자로 손꼽히는 학자다.

 

나는 루시에게 악마가 또 못된 짓을 하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Look! Why are you giving me a hard time?" -- "이것 보세요! 왜 당신은 나를 괴롭힙니까?"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라고 지시한 어느 영국인 자각몽 연구자가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악마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How the hell should I know? You are the dreamer, aren't you?" -- "내가 젠장 그걸 어떻게 아냐? 꿈을 꾸는 사람이 너잖아?"

 

© 서 량 2016.04.16

-- 뉴욕중앙일보 2016년 4월 2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