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16

|컬럼| 402. 꽃의 맛

옛날 정신과 수련의 시절에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Keep your chin up! (턱을 치켜 드세요! - 힘 내세요!)”라 한 적이 있다. 그 퉁명스러운 60대 여자는 그런 말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발칵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낯이 뜨거웠다.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건 마치도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가 말한다. 내과의사가 배가 아픈 환자에게 아프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셈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하세요! 하는 싸구려 입버릇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will power, 의지력(意志力)’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게 뭔지 모른다며 설명을 해달라 해서, ‘will’은 의도(..

|詩| *카타토니아

숲이 긴장하는 순간 돌개바람이 불어온다 미생물은 우울하다 미생물이 얼어붙는다 미생물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미생물이 난데없이 우울증을 벗어나네요 첨벙, 강물에 뛰어드는 당신은 열대성 돌개바람 속 원시인 중증 정신질환자다 주기적 긴장증(緊張症)의 노예 옴짝달싹 하지 않는 미생물 숨도 쉬지 않는 생명의 노예다 * Catatonia – 두뇌활동이 정상이지만 대화를 시도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 증세, 때로는 몸 동작도 정지된 상태를 유지한다 © 서 량 2021.03.25

2021.03.25

|컬럼| 303. 감정의 역동성

주말 아침에 한 정신과의사가 티비 뉴스 프로에서 우울증에 대하여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새로 개발된 약을 추천하면서 그 약이 우울증 외에도 불안증세가 있으면 그것 마저 곁들여서 잘 처리해준다고 언급한다. 그 순간 셰익스피어가 햄릿 입을 통해서 한 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이상스럽게 연상하면서 움찔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그 유명한 구절을 나는 그때 굳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직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있다, 없다' 하는 흑백논리를 추구하는 그 유능해 뵈는 백인의사에게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이를테면 한 여자가 임신이다, 아니다 할 때처럼 우울증..

|컬럼| 231. 자살은 타살이다!

2015년 3월 24일에 독일 저먼윙즈 항공의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는 기장이 자리를 비운 틈에 운행중인 여객기를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에 시속 700 킬로미터의 속도로 추락시켜 자신을 포함한 탑승자 150명 전원을 죽였다. 그의 우울증 병력을 밝힌 언론은 이 사건을 자살행위로 결론을 내리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한국의 한 언론사도 “죽으려면 혼자 죽지…”라는 표제어를 내걸고 이 터무니없는 참사를 보도했다. 나와 남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살은 곧잘 타살을 수반한다. 이들은 ‘자살=타살’이라는 이상야릇한 공식을 잘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이 극도로 분노했을 때 내뱉는 저 살기등등한 말 ‘너 죽고 나 죽자’도 요즘 거론되는 인터넷 '동반자살' 사이트의 취지를 강도 높게 격려하고 있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