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4일에 독일 저먼윙즈 항공의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는 기장이 자리를 비운 틈에 운행중인 여객기를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에 시속 700 킬로미터의 속도로 추락시켜 자신을 포함한 탑승자 150명 전원을 죽였다. 그의 우울증 병력을 밝힌 언론은 이 사건을 자살행위로 결론을 내리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한국의 한 언론사도 “죽으려면 혼자 죽지…”라는 표제어를 내걸고 이 터무니없는 참사를 보도했다.
나와 남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살은 곧잘 타살을 수반한다. 이들은 ‘자살=타살’이라는 이상야릇한 공식을 잘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이 극도로 분노했을 때 내뱉는 저 살기등등한 말 ‘너 죽고 나 죽자’도 요즘 거론되는 인터넷 '동반자살' 사이트의 취지를 강도 높게 격려하고 있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우울증이란 화가 안쪽으로 치미는 상태(anger turned inward)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잔잔한 슬픔과 불 같은 분노의 밑바닥이 일맥상통하듯이 자신을 말살하려는 욕구가 남을 죽이는 행동으로 돌변하는 메커니즘이 가능하다는 학설에 당신과 나는 몹시 당황한다.
생물학에 ‘homology’라는 전문용어가 있다. ‘상동성(相同性)’이라 번역된 이 말은 동물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형질, 유전자 서열, 심지어는 형태 등등이 동질성을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상동성 이론에 의하면 박쥐 날개와 사람 팔의 뼈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 않다. 게다가 이 이론은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동물 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미생물에게 조차 너끈히 적용시킬 수 있다.
긍정적인 차원에서 상동성은 인간심리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가 도로에서 차에 치이려는 위험한 찰나에 행인이 뛰어들어 어린애를 구하고 자신이 대신 차에 치는 경우다. 어린애의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착각한 한 인간이 결과적으로 다른 인간을 구하고 자신이 죽는 상황이다.
굳이 이런 돌발사고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타인과 타인 사이에 친절을 베푸는 성향 자체가 벌써 우리의 상동성을 전제로 한다. 우리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같은 언어와 같은 감성이라는 기본조건에서 태어난다.
‘homo’는 희랍어로 같다(same)는 뜻이고 누구나 알아듣는 영어의 ‘homosexual’은 물론 동성애라는 말이다. 그러나 라틴어의 ‘homo’는 사람(man)이라는 의미.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를 가리키며 로마의 집정관 빌라도가 한 말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가 떠오른다. 희랍어와 라틴어를 종합하면 ‘homo’는 '사람은 다 같다'는 뜻이렸다.
내가 지금껏 근 40년동안 치료한 숱한 우울증 환자들 중에도 자살한 사람들이 많다. 통계적으로 기분장애 환자들 중에 15퍼센트는 기어이 자살을 한다.
한 환자는 12살 때 아버지가 권총자살을 했다. 그는 그 나이에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했던 장본인이다. 이제 거진 60살에 접어든 그는 지금까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아직도 그 끔찍한 장면을 가끔씩 꿈에 보면서 몸서리를 친다. 그는 부인과 자식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우울해도 절대로 자살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나는 그 환자를 참 좋아하고 믿고 존경한다. 이쯤 해서 당신은 자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차갑게 피력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의 이기성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죽하면 가톨릭교에서는 교리로 자살을 금할까 싶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사고방식이 분노심을 일으킨다. 생존자들의 고통과 상처를 뻔히 예측하면서도 그들은 기어이 자신의 생명을 단절한다. 심리학적 차원에서도 자살은 분명히 타살이다.
© 서 량 2015.04.05
-- 뉴욕중앙일보 2015년 3월 2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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