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10

|詩| 꿈에 나오는 사람들

얼핏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분명 낯 익은 얼굴이다. 정면이 아닌 옆 얼굴 모습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어요. 굳이 심중을 밝히지 않아도 좋으련만. 이상해 딱히 내게 접근하지 않아도 좋았을망정.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이 편치 않으면 않을 수록 많은 등장인물들이 꾸역꾸역 무대로 쏟아져 나왔다. 구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스쳐가는 동안 우렁찬 남성합창이 울렸던 거야. 멜로디가 까무러치게 아름다웠어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원해서였다고 하면 더 더욱 애절해. 소나타 형식을 따를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정작 저 자신은 곡의 진행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는 꿈을 꾸는 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냐. 조명이 어두..

발표된 詩 2023.03.08

|詩| 간장에 비친 얼굴

날 맑은 가을날 장독대에 올라가 간장항아리에 얼굴을 집어넣으면 새까만 간장거울 속에 눈 흰자위가 분명치 않은 커다란 얼굴 열 살 짜리 얼굴 내 얼굴이 아닌 얼굴이 보인다 얼른 머리를 빼고 다시 보면 매운 고추와 숯 덩어리 몇 개 무작정 둥둥 떠 있는 간장항아리 속 간장거울 뒤쪽으로 은박지 하늘이 흔들린다 내 얼굴도 세모 네모 마름모꼴 사다리꼴로 일그러진다 크레용으로 북북 그린 그림 유년기 도화지 속 도깨비 얼굴 골이 잔뜩 난 도깨비 이마에 뿔이 크게 두 개 솟아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날 간장항아리 안에서 끈질기게 파도가 친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파도의 얼굴을 올려다 본다 끝이 안쪽으로 하얗게 말리는 어떤 파도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크다 © 서 량 2004.10.23 2005년 4월호에 게재 ..

발표된 詩 2022.03.20

|컬럼| 260. 부끄러운 혹은 성숙한 뼈

우리 마음의 기능 중 초자아(superego)가 자아(ego)를 대하는 품새는 마치도 부모가 자식을 다루는 태도와 흡사하다. 초자아는 법과 질서를 일깨워주는 부성적(父性的)인 면 외에도 자아이상(ego ideal)을 북돋아주는 모성적(母性的)인 부드러움을 지닌다. 정신과 의사 피어스(Piers)와 인류학자 싱어(Singer)가 쓴 "Shame and Guilt" (1971, Norton)를 다시 읽었다. 당신과 내가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수치심과 죄책감의 정신분석적 해석과 인류학적 성찰로 가득한 100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다. 부끄러움과 죄의식이라는 우리의 정서는 온전한 초자아의 발육에서 비롯한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일설에 의하면 고대영어에서 '빚을 갚다'는 뜻으로 통했던 'guilt'는 참으로 딱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