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석상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 남들을 무료하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으레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메일 체크도 하고 ‘페북’, ‘Facebook’도 슬금슬금 열어 본다.
2016년에 미국인의 79퍼센트가 페북에 가입돼 있고 그중 절반 이상이 하루에도 몇 번씩 페북을 클릭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좋은 경치와 맛있는 음식 사진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람 얼굴이 판을 치는 곳이 페북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관심의 대상은 자신과 남의 얼굴이다. 엊그제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스캔하고 엄마 또한 아기의 얼굴을 그윽하게 응시한다. 생후 이틀만에 벌써 아기는 엄마의 표정을 흉내 낼 줄 안다는 연구보고도 나와있다. 정신분열증과 자폐증 환자들은 남들의 얼굴 표정을 읽는 능력이 정상인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얼굴은 서로의 감정을 알리고 알아차리는 가장 유효적절한 기관이다. 사람 몸에 국가적인 비유법을 쓰자면 감정표현의 백악관이나 청와대는 어깨나 무릎이나 팔꿈치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얼굴이다.
얼굴은 또 자타가 공인하는 매우 예민한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특히나 우리는 남녀 사이에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키스를 하거나, 그 직전 혹은 얼마 후가 아니면 절대로 상대방 얼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만큼 얼굴은 부끄럽고도 중요한 우리 몸 어느 부분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은밀하고 사적인 몸의 일부를 한사코 감추는 자세가 타고난 본능이라면 얼굴만큼은 온 정성을 쏟아 다듬고 치장해서 페북에 화려하게 노출시키려는 우리의 행태가 재미있다.
‘Get out of my face!’를 사전은 ‘내 앞에서 꺼져!’라고 공격적으로 옮겨 놓았다. 이 말은 누가 나를 진절머리 나게 성가시게 했을 때 확, 튀어나오는 짜증스러운 슬랭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face the music’이라는 관용어도 있다. 이 표현은 ‘벌을 달게 받다’, ‘어려운 일에 대처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옛날 군대에서 군인이 불명예스럽게 쫓겨날 때 군악대가 딩가딩가 풍악을 울렸던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있고, 무대에 선 가수가 오케스트라의 전주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설명도 있다. 이때도 ‘face’는 아주 민감한 동사로 활약한다.
어원학자 서정범은 얼굴의 ‘얼’이 꼴(形)의 옛말이고 ‘굴’도 꼴의 뜻을 지닌다고 피력한다. 나는 ‘얼’이 영혼(알, soul)을 뜻하면서 ‘굴(窟)’은 원시인이나 동물의 피신처, 즉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얼굴은 한 사람의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얼굴에는 굴(窟)이라는 한자어가 들어갔지만, 순수한 우리말 ‘낯’도 만만치 않은 존재다. 당신은 중국말에 대한 사대주의 때문에 ‘낯짝’같이 비속어로 잘 쓰이는 ‘낯’을 싫어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나는 면목(面目) 대신에 ‘낯’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좀 거만하게 들리는 ‘면목이 없다’와 겸손한 말투의 ‘볼 낯이 없다’의 확연한 차이점에 대하여.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는 고전적 표현이 있는가 하면 ‘쪽 팔린다’는 현대판 속어도 있다. ‘쪽’은 ‘낯’보다 더 비속어지만, 에헴, 2019년 초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을 미국에서 주시하면서 이처럼 마땅한 말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쪽 팔린다. 나 또한 중국말을 쓰면서 ‘면구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으련만. ‘면구’는 면괴(面愧)의 현대어다. 얼굴 면에 부끄러울 괴, 그러니까 면구스럽다는 말은 ‘얼굴이 부끄럽다’는 뜻이렸다. 앞서 말했듯이, 왜 하필 당신과 나는 어깨나 무릎이나 팔꿈치가 아닌 얼굴이 부끄러울까?
© 서 량 2019.02.24
--- 뉴욕 중앙일보 2019년 2월 27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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