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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잘못된 詩

잘못된 詩 -- *까뮈유 끌로델에게 틈만 생기면 당신의 시는 퉁명스러워져요 갓난아기가 따로 없다니까 시를 그렇게 호락호락 들었다 놨다 하지 못하지 잘못된 책은 바꿔드립니다 아무 말이나 멋대로 하지 말아요 민들레 홀씨들이 쿵쿵 윈드쉴드에 부딪친다 충격을 누그리다시피 나도 쾅쾅 맞부딪친다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나를 홀리는 당신 시는 완전 꿈이야 훅 불면 바람에 훨훨 날아가버리는 몸을 흔들면서 * 프랑스 조각가(1864~1943) 로댕과 한동안 협작을 함 생의 후반기 30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냄 시작 노트: 2020년 집에 불이 나 후 전셋집에서 살 때 우연히 “왈츠”라는 조각품을 발견했다. 조각가인 까뮈유 끌로델은 오귀스트 로댕의 애인이었다. 그들은 20년 동안 격정적인 관계였다. 그녀는 파리 근교의 정신병..

2023.02.19

시가 사는 집 / 김종란

시가 사는 집 김종란 우회 하며 그 짧은 길을 모르는 집처럼 페니와 쿼터를 세면서 백불짜리 종이를 세면서 오늘은 그만 지나친다 백일홍 한송이 손에 쥐고 바라보며 튼 입술 복분자술로 적신다 얕은 개울물 가파르게 흐르며 마음은 그곳을 넘본다 나의 생각하는 열쇠가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문이 덜커덩 열린 데도 아니다 만나기 원하는 것을 만난다면 그것은 네가 아니다 마음이 가 닿지도 발길이 가 닿지도 아이러니도 가 닿지 않아 멱살 잡고 뒤 흔들고 싶어하는 두 손 감추고 오늘은 너에게 가야 한다고 그 짧은 길을 우회한다 © 김종란 2010.07.06

|잡담| 날씬한 詩와 뚱뚱한 詩

그럴만하게도 됐다. 말을 삼가는 사람보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듯이 시인들도 詩에서 말을 많이 하는 시인들이 득세를 하는지라, 옛날 詩에 비해 요새 詩는 한 행에 쏟아지는 글자 수가 거의 30자를 넘는 수가 많아. 그래서 詩가 무지기 뚱뚱하고 비대해진 느낌이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 날씬한 詩의 시대가 거하고 뚱뚱한 詩의 시대가 내했도다. 그토록 안스럽게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간결하고 함축성 있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차분하게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집중력은 다 없어지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말만 귀에 들어 온다는 말이지. 한 번만 해도 무난하게 귀에 들어 올 수 있는 내용을 한 열 번쯤 이리저리 말을 바꿔가면서, ..

|詩| 엄숙한 시인들

눈썹이 짙거나 귀밑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내 시를 놓고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제발. 시도 일상도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요? 레슬링에서처럼 무거움이 가벼움을 능가한다고요? 서슬이 시퍼런 시인들이 시퍼렇다 못해 시푸르뎅뎅한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자기들 옷을 내게 뒤집어 씌우려 해요. 벌거벗은 몸통이 마구 긁히네요. 엄숙한 시인들이 독자를 좌지우지한다. 시인이 독자에게 덤벼든다. 오뉴월 바람이 연삽한 풀잎들을 마구 자빠트리네요. 너희들은 왜들 그렇게 똥폼을 잡으려 하느냐들. ⓒ 서 량 2007.07.03 - 2021.05.28

2021.05.28

|詩| 농축된 생각이 풀어질 때

詩는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내가 부르면 詩가 내게로 달려오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지 詩가 나인지 내가 詩인지 헷갈려요 둘이서 티격태격 억지를 부리는 대목입니다 두 쪽, 세 쪽, 네 쪽으로 조각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당신에게 횡설수설하고 싶어 대화의 엑기스를 파악하기 힘들어요 詩는 대화다 내 상투적 의식의 배경을 없애는 수법으로 내 詩語에 당신의 詩語를 합치는 기법으로 뮤즈의 내실에 노크 없이 들어간다 당신이 연주하는 주제와 변주곡이 멋져요 나는 농축된 詩, 꿈이다 © 서 량 2021.04.2

2021.04.23

|Poem| Riposte

Riposte (1917) --William Carlos Williams Love is like water or the air my townspeople; it cleanses, and dissipates evil gases. It is like poetry too and for the same reasons. Love is so precious my townspeople that if I were you I would have it under lock and key--- like the air or the Atlantic or like poetry! 반론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 사랑은 물이나 공기 같습니다 동네사람들이여; 사랑은 씻어내고, 사악한 공기를 없애줍니다. 사랑은 또 같은 이유로 시와도 같..

|컬럼| 351. Fishwife 스토리

꿈의 해석에 대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의 해석은 똥꿈이나 돼지꿈 따위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는 세간의 해몽과 엄청나게 다르다. 꿈은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 있으므로 집단의식에 입각한 공식대로 풀이한다면 죽도 밥도 안된다. 꿈은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사적인 스토리텔링이다. 정신분석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을 나는 자주 하는 편이다. 꿈을 해석하는 사람 또한 스토리텔링에 몰두한다. 두 사람이 숙연한 표정으로 마주앉는다. 이들의 대화는 과학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스토리에 전념할 때 둘 사이에 힐링이 일어나는 신비한 절차가 이루어진다. 어린아이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어머니가 읽어주는 베드타임스토리는 또 어떤가. 늑대, 곰, 혹은 남매를 가마솥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