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하게도 됐다. 말을 삼가는 사람보다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듯이 시인들도 詩에서 말을 많이 하는 시인들이 득세를 하는지라, 옛날 詩에 비해 요새 詩는 한 행에 쏟아지는 글자 수가 거의 30자를 넘는 수가 많아. 그래서 詩가 무지기 뚱뚱하고 비대해진 느낌이야. 물론 나도 마찬가지. 날씬한 詩의 시대가 거하고 뚱뚱한 詩의 시대가 내했도다.
그토록 안스럽게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간결하고 함축성 있는 말이 안 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차분하게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집중력은 다 없어지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말만 귀에 들어 온다는 말이지. 한 번만 해도 무난하게 귀에 들어 올 수 있는 내용을 한 열 번쯤 이리저리 말을 바꿔가면서, 한 말 또하고, 한 말 또하고 해야 겨우 귀에 들어들까 말까 한다는 거지.
언제부터인지 정형시와 수필과 산문시와 랩(rap)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운률감이 있는 詩는 흥이 난다. 지루한 詩는 리듬이고 나발이고 없이 마냥 지루하기만 해. 詩 월간지 같은 데서 혹가다 아주 잘 빠진 랩 같은 詩를 읽으면 어깨가 들썩들썩해 진다니까.
그런 거 말고 뭘 더 바래. 詩에서 도대체 뭘 더 바라겠다는 거야. 위대한 교훈이라도 얻고 싶은 거니? 詩를 읽은 본전을 뽑겠다고? 詩가 웰빙 푸드나 은행적금 같은 거라고?
© 서 량 20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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