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92. 뮤즈, 영감, 그리고 음악

서 량 2009. 10. 24. 06:44

 'muse'는 14세기경 생각에 잠긴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 말은 또 남이나 자신을 재미있게 한다는 뜻의 'amuse'와 박물관, 'museum'과도 그 말의 뿌리가 같다.

 

 희랍신화는 올림피아산(山) 주변 신들의 최고 대빵인 바람둥이 제우스(Zeus)가 기억(記憶)의 여신 니모시니(Mnemosyne)와 관계해서 잉태시킨 아홉 명의 딸들이 하나같이 예술을 수호하는 직책을 맡았다고 우리에게 구수하게 이야기 해준다. 아홉 개의 예술 분야는 역사, 서사시, 연애시, 음악, 찬가(讚歌), 비극, 희극, 춤, 그리고 천문학이었다. 어찌 자연과학인 천문학이 예술 취급을 받았냐고 당신이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그거야 제우스에게 직접 물어볼 일이겠다.

 

 그 아홉 딸들을 복수(複數)로 총칭해서 ‘Muses’라 한다. 그러나 대문자로 시작해서 단수, ‘Muse’라 하면 시인들이 받는 영감(靈感)을 의미한다. 그리고 13세기에 불어에서 수입된 영어, ‘music’ 또한 ‘Muse’와 말 뿌리를 같이한다. 이렇듯 시와 음악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영감(靈感)은 예술가가 자기 작품의 주제를 감지하는 순간의 창조적 전율감을 일컫는다. 한자로 '영묘할 영'에 '느낌 감'. 영(靈)은 비(雨)와 무당(巫) 사이에 조그만 입(口)이 세 개가 놓여있는 형태다. '口'에는 관문이라는 뜻도 있으니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예술가들에게 쏟아지는 요상한 메시지, 영감이란 도대체 어떤 세 개의 통로를 이용하여 강령하는 것일까. 천주교 식으로, 성부, 성자, 성신?

 

 플라톤은 기원전 399년에 민심을 교란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당한 소크라테스를 두호하는 <변명: Apology>에서 시인의 창작력이란 선천적인 재능과 비이성적(非理性的)인 영감의 힘이 합쳐진 데서 비롯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온: Ion> (BC 380년)과〈파이드로스: Phaedros> (BC 360년)에서 플라톤은 시인들이란 뮤즈의 여신이 수여하는 영감에 지배당하여 우왕좌왕하는 미치광이들이라 했다. 그리고 시인은 ‘지성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시를 산출하는' 사람들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정신분석학에서도 예술인들의 창조성이 무의식의 영역에 떡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플라톤이 눈독을 들인 뮤즈가 시인들에게 증여하는 영감은 무당이 신들리는 경지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요컨대 시인이나 예술가들의 마음은 자신들의 마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서기 1300년에 통용되던 ‘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신, 혹은 귀신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명사였고 후기 라틴어에서 ‘inspire’는 불(火)이나 공기가 사람 몸 안으로 들어 온다는 뜻의 동사였다. 그리고 1390년이 돼서야 'inspiration'은 정식으로 현대적 의미에서의 영감이라는 뜻이 됐단다.

 

 ‘poet’은 13세기부터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서 ‘창조자’라는 의미였다. 종교인들에 의하면, 천지창조가 신의 섭리와 의도였다면 그 엄청난 창조의식을 새롭게 조명하는 역활을 시인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poet’은 14세기에 현대적인 개념의 ‘작가’를 총칭했고 시인이라는 특수한 의미로는 16세기 중엽에서야 비로소 양키들의 의식에 그 튼튼한 뿌리를 박았던 것이다.

 

 플라톤은 당시의 음송시인(吟誦詩人: 가수 ?)들이 묵음(默音)인 텍스트만으로 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조용한 시인들보다 수준과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규정했다. 어쩌면 시끄러운 음악은 조용한 명상보다 폼이 덜 나고 예술적 품격이 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라. 무음(無音)으로 운행되는 천체가 어찌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겠는가. 시의 진수가 당신이나 나같이 둔한 귀로는 도저히 감지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천구(天球)의 음악에서 창출됐다면 어쩔 것인가. 그것도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황홀한 음악이라면.

 
© 서 량 2009.10.23

--뉴욕중앙일보 2009년 10월 2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