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에는 화가 났다는 뜻 외에 미쳤다는 의미도 있다. 미국인이 ‘Are you mad?’ 하면 ‘너 화났니?’지만 똑 같은 말이 영국영어에서는 ‘너 미쳤니?’가 된다.
13세기경 ‘mad’에는 화가 났거나 미쳤다는 것 말고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뜻도 있었다. 결국 미친다는 것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는 상태거나 지능이 지독하게 낮아서 바보 천치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우리말 사전에 ‘미치다’는 얼빠졌다는 것 말고 도달(到達)했다는 뜻 또한 있어서 말에 예민한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당신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사자성어를 보고 무릎을 탁 치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진리를 터득한 사람의 희열에 빠진 적이 있지 않았던가.
불광불급은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석하지만 ‘미쳐야 미친다’ 하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쉽게 풀이하기도 한다. 무엇이건 미친 듯이 푹 빠져야 어떤 경지가 이루어진다. 이 사고방식에 의하면 요사이 한국 티브이에 등장하는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는 저 숱한 달인(達人)들은 다 미친 사람들이다. 물론 이때 미쳤다는 말은 실성했다는 게 아니라 어떤 심오한 차원에 도달했다는 거다.
언어학에 깊이 빠진 미국인이 아니면 전혀 모르는 폐어(廢語), 즉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말로 ‘wood’가 있다. 이 단순한 단어를 놓고 영어에 대하여 내노라! 하는 자부심을 품고 있는 당신이 목재, 혹은 숲이라는 기본 의미만 알고 다른 뜻을 모른다 해서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 좀 미심쩍겠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사전을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폐어로 알려진 ‘wood’는 고대영어의 ‘wod’가 변한 말로서 ‘격렬하게 실성했다’는 뜻. (violently insane) 이 말에 해당하는 전인도 유럽어는 예술가들이 죽자고 매달리는 영감(靈感 – inspiration)을 의미했다. 그리고 고대 아일랜드 말로 ‘wod’는 노래, 시(詩), 또는 시인을 뜻했다. 바람, 전쟁, 마법, 영감, 죽은 사람의 영혼 따위를 맡아 주관하는 북유럽 신화의 주신(主神) 오딘(Odin)도 ‘wod’와 어원이 같다.
지금까지 한 말을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내려진다. [미치다 = 화내다 = 멍청하다 = 도달하다 = 격렬하게 실성하다 = 인스피레이션 = 노래 = 시 = 시인]
나는 이쯤 해서 시인들은 미친 사람들이라는 조심스러운 발언을 해야겠다. 인생과 우주를 향한 감성과 언어기법이 없는 정상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 신비한 시의 영역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일말의 위로가 있기는 하지만.
미쳤다는 뜻으로 한자어에 잃을 실, 성품 성을 써서 ‘실성(失性)했다’는 고급스러운 말이 있다. 성품을 잃어버리는 것이 미치는 것이라면, 미치기 전 상태, 즉 우리가 원래 타고난 품성은 지극히 정상이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다시 말해서, 타고난 본성만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지낸다면 아무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로 정신과의사들은 할 일이 없어져서 하나씩 둘씩 폐업을 해야 될지도 몰라.
그러나 또 한편 유전적 요소를 들먹이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미친다는 일은 조상이 계승해 준 질이 안 좋은 DNA 탓으로 돌려도 마땅하다는 학설이 한참 유력한 금세기 추세다. 요컨대 잘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는 우리의 옛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기가 일쑤인데다가 지능이 낮은 유전인자가 활개를 치는 불우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정신과의사에게서 분노를 삭이는 방법을 배우고 익힌다. 배움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제2의 천성이 될 때까지.
© 서 량 2015.08.24
-- 뉴욕중앙일보 2015년 8월 2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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