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81. 자살의 의미

서 량 2009. 5. 26. 13:35

 

자살을 영어로 'suicide'라 한다. 'sui'는 라틴어의 'self(자기)'라는 뜻이고 'cide'는 '자르다(cut)'라는 의미니까 'suicide'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말. 한자로는 '자살'이라고 하는데, 우리 고유의 말에는 이 단어에 해당하는 명사가 없다. 우리에게 자살이라는 개념은 혹시 중국에서 빌려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cide'가 목숨을 끊거나 자른다는 의미로는 'suicide' 외에도 'homicide(타살); genocide(인종학살); patricide(살부); infanticide(영아학살)' 같은 어휘들이 즐비하다. 

 

'decide'는 결정한다는 말이다. 한 양키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양쪽을 잘 분석해서 한쪽을 과감하게 짤라 내야 결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 또한 힘이 드는 결정을 할 때 결단(決斷)을 내린다 한다. '단'은 옥편에 '끊을 단'이라 나와있다. 단두대(斷頭臺: guillotine)에서와 같은 '단'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살한 사람은 법으로 장례식을 금지했고 시신을 비석이 없이 길가에 매장토록 했다. 불란서의 루이 14세는 1670년에 미래의 자살 후보자들을 미리 엄하게 다스리는 의도에서 자살자의 재산을 국가에서 몰수하도록 했다. 지금도 자살은 생명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19세기 초엽까지 영국에서는 정신병자가 아닌 사람이 자살을 했을 때 범죄자로 취급했다. 1823년까지 자살자의 시신을 그리스 전통을 따라 노변(路邊)에 매장시켰고 요 얼마 전1961년까지 불란서의 범례를 쫓아서 자살한 사람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것은 자살자의 후예들에게 고통을 줌으로서 미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예방하려는 통치자의 속셈이었다.

 

'kill'은 '죽이다'라는 타동사로서 1205년에 '때리다'라는 의미로 시작된 단어다. 양키들이 동물이나 사람을 죽일 때 돌이나 도끼 혹은 몽둥이로 타격을 주어 숨지게 했던 잔인한 습관에서 유래한 말. 역설적이지만 아직도 현대영어에 그대로 쓰이는 'quell (가라앉히다; 평정하다; 억누르다)'과 'kill'은 그 말의 뿌리가 같다.

 

당신은 '죽이다'라는 개념이 어느 불안정한 상태를 평정하는 의미라는 것이 좀 시적(詩的)이라고 느끼지 않는가. 우리말에서도 그 말은 욕심이나 욕망을 죽인다는 식으로 육체적이건 심리적이건 한 생명이 미친 듯 날뛰는 작태를 평온하게 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는 숨을 고르게 조용히 쉬는 것을 '숨을 죽이다'라 한다. 숨을 죽인다고 해서 절대로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우리말 비속어로 '뒈지다'(죽다)를 경기도와 경상도 방언으로는 '뒤지다'라 한다. '뒤지다'는 표준어로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의미에 해당한다. 

 

'죽다'는 '죽이다' 같은 타동사가 아니라 저절로 목숨을 다한다는 뜻의 자동사로서 소위 법의학에서 말하는 자연사(自然死)를 지칭한다. 그리고 '죽다'는 '기가 죽다; 풀이 죽다'에서처럼 한 인간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상태를 보여준다. 

 

오죽하면 어느 특정 종교에서는 자살을 금하지 않았던가. 자연사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스스로 인위적으로 유발하는 죽음, 즉 자살행위란 우리에게 과격한 충격을 준다.

 

그래서 한 인간이 자행한 자살의 결과는 막중한 충격과 그 예측불허의 연쇄작용을 창출할 뿐이다. 

 

© 서 량 2009.05.25

--뉴욕중앙일보 2009년 5월 2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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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자살의 의미

자살을 영어로 ‘suicide’라 한다. ‘sui’는 라틴어의 ‘self(자기)’라는 뜻이고 ‘cide’는 ‘자르다(cut)’라는 의미니까 ‘suicide’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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