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대화 대화 말을 잠깐 쉬는 사이에 마음을 읽는다우리는 대충 쉼표에서 다음 소절을 예상한다차분해지는 얼굴 마주치지 않는 눈길行길 바 스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당신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詩作 노트:에드워드 호퍼가 한참 그림을 그리며 살던 맨해튼 남단 Greenwich Village 行길 그림 속에 들어갔다 ⓒ 서 량 2024.09,10 詩 2024.09.10
|詩| 삼각관계 삼각관계 대화는 늘 여럿이 하는 데서 끝나는 법 손을 흔드는 것도 화법인데요 초록 파도에 표류하는 열 발짝 안짝 크기 타원형 섬 여자 둘 남자 둘 중 연신 떠들어대는 사람은 나 혼자다 詩作 노트:Cross Westchester Expressway 8번 출구를 빠져 잠시 후에 들어간 PurchasePepsiCo Garden.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두 여자 조각들과 많은 말을 나눴다. © 서 량 2024.07.01 자서전的 詩모음 2024.07.01
무한(無限) / 김종란 무한(無限) 김종란 떨어지는 봄 시간 찻잔에 받쳐든다 미소 짓는 대화들을 모아 술병에 담아둔다 겹사구라 진분홍 꽃송이들 무거워 작은 웃음소리에도 흔들린다 푸르른 눈빛에 담겨 흔들린다 푸른 잔디와 하얀 길을 짚고 가는 무한, 벚꽃송이 들어 보는 무한의 손 꽃잎에 내리는 빛 무한 © 김종란 2018.05.01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19
|詩| 수제비구름 이제 와서 당신을 애틋하게 익힐 수 있다니 나보다 어린 나이 내 옛날 부모도 희뿌연 어항 속 금붕어도 무궁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망설임 끝에 누구나 과거를 등지고 돌아서는 거래요 네모 반듯한 제사상에 기우뚱 세워진 할아버지 사진이 허상이었어 여름방학 키 큰 노적가리 시골 할머니 집 부엌에서 내게 꼬리치며 달려들던 강아지도 허상 트럭 운전사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내 쪽으로 다가온다 트럭은 거대해 우주의 운동신경도 허접한 동영상일 뿐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수제비 물방울 겹치듯 포개지는 사랑 산마루 언저리로 둥둥 뜨는 수제비구름도 거대해 어머, 영원한 아침은 징그러워 나는 확고한 하늘빛으로 얼어붙는다 당신을 향한 거대한 그리움에서 © 서 량 2011.03.16 – 2021.07.04 詩 2021.07.04
|詩| 농축된 생각이 풀어질 때 詩는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내가 부르면 詩가 내게로 달려오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지 詩가 나인지 내가 詩인지 헷갈려요 둘이서 티격태격 억지를 부리는 대목입니다 두 쪽, 세 쪽, 네 쪽으로 조각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당신에게 횡설수설하고 싶어 대화의 엑기스를 파악하기 힘들어요 詩는 대화다 내 상투적 의식의 배경을 없애는 수법으로 내 詩語에 당신의 詩語를 합치는 기법으로 뮤즈의 내실에 노크 없이 들어간다 당신이 연주하는 주제와 변주곡이 멋져요 나는 농축된 詩, 꿈이다 © 서 량 2021.04.2 詩 2021.04.23
|컬럼| 381. 그레고리 로버트가 또 며칠 동안 약 먹기를 거부했다. 병동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를 보였지만 다른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와 여유 있게 말할 짬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로버트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약을 거절했다는 해석은 맞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좀 알고 있는 편이다. 전에도 바쁜 와중에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 약을 끊으려 하지는 않았다. 로버트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심리학자와 소셜워커를 포함한 직원들 앞에서 아침 회진 시간에 그(*)와 대화를 나눈다. -왜 약을 안 먹으려 하지? *나는 돈이 많이 있어요.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피하는구나! *나는 보디 빌딩을 좋아합니다. -다시 대답해라. 왜 약을 안 먹지? 약을 안 먹으..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21.01.25
|컬럼| 341. 내 그림자 그룹치료를 하던 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가장 바람직한 대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긍정적(positive)인 생각이 최고라고 누가 덧붙인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저절로 긍정적인 말이 오갈 게 아니냐고 한마디 보태니까 좌중이 숙연해진다. 이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여건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알고 있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 으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ositive’는 사전에 긍정적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나오고 확실하거나 낙관적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모두 다 한자어다. 순수한 우리말에는 ‘positive’라는 개념이 없었던 걸까. 사실 ‘positive’,..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9.07.15
|컬럼| 336. 독백에서 출발하여 그룹세션을 하다가 환자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남에게 말을 거는가. 누군가 의사소통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소통의 밑바닥에는 무슨 이유가 깔려 있는가, 하며 내가 다음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제발 자꾸 물어보지 말라고 누가 짜증을 부린다. 한쪽이 ..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2019.05.06
|詩| 대화 꽃은 깊은 밤에보다 아침에 감성이 풍부합니다 멋 적은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는 그런 시간에요 꽃의 소임은 날 유혹하려는 마음을 잘 감추는 일일 걸 꽃은 당신이 바짝 다가와도 꼼짝달싹하지 않는 화사한 아침 이슬 빛, 한참을 내버려두어도 고스란히 남아도는 그렇게 진한 감각이랍니다 © 서 량 2012.05.18 詩 201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