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12

|詩| 삼각관계

삼각관계 대화는 늘 여럿이 하는 데서 끝나는 법 손을 흔드는 것도 화법인데요 초록 파도에 표류하는 열 발짝 안짝 크기 타원형 섬 여자 둘 남자 둘 중 연신 떠들어대는 사람은 나 혼자다 詩作 노트:Cross Westchester Expressway 8번 출구를 빠져 잠시 후에 들어간 PurchasePepsiCo Garden. 벤치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두 여자 조각들과 많은 말을 나눴다.    © 서 량 2024.07.01

|詩| 수제비구름

이제 와서 당신을 애틋하게 익힐 수 있다니 나보다 어린 나이 내 옛날 부모도 희뿌연 어항 속 금붕어도 무궁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망설임 끝에 누구나 과거를 등지고 돌아서는 거래요 네모 반듯한 제사상에 기우뚱 세워진 할아버지 사진이 허상이었어 여름방학 키 큰 노적가리 시골 할머니 집 부엌에서 내게 꼬리치며 달려들던 강아지도 허상 트럭 운전사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내 쪽으로 다가온다 트럭은 거대해 우주의 운동신경도 허접한 동영상일 뿐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수제비 물방울 겹치듯 포개지는 사랑 산마루 언저리로 둥둥 뜨는 수제비구름도 거대해 어머, 영원한 아침은 징그러워 나는 확고한 하늘빛으로 얼어붙는다 당신을 향한 거대한 그리움에서 © 서 량 2011.03.16 – 2021.07.04

2021.07.04

|詩| 농축된 생각이 풀어질 때

詩는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내가 부르면 詩가 내게로 달려오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지 詩가 나인지 내가 詩인지 헷갈려요 둘이서 티격태격 억지를 부리는 대목입니다 두 쪽, 세 쪽, 네 쪽으로 조각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당신에게 횡설수설하고 싶어 대화의 엑기스를 파악하기 힘들어요 詩는 대화다 내 상투적 의식의 배경을 없애는 수법으로 내 詩語에 당신의 詩語를 합치는 기법으로 뮤즈의 내실에 노크 없이 들어간다 당신이 연주하는 주제와 변주곡이 멋져요 나는 농축된 詩, 꿈이다 © 서 량 2021.04.2

2021.04.23

|컬럼| 381. 그레고리

로버트가 또 며칠 동안 약 먹기를 거부했다. 병동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를 보였지만 다른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와 여유 있게 말할 짬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로버트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약을 거절했다는 해석은 맞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좀 알고 있는 편이다. 전에도 바쁜 와중에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 약을 끊으려 하지는 않았다. 로버트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심리학자와 소셜워커를 포함한 직원들 앞에서 아침 회진 시간에 그(*)와 대화를 나눈다. -왜 약을 안 먹으려 하지? *나는 돈이 많이 있어요.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피하는구나! *나는 보디 빌딩을 좋아합니다. -다시 대답해라. 왜 약을 안 먹지? 약을 안 먹으..

|컬럼| 341. 내 그림자

그룹치료를 하던 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가장 바람직한 대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긍정적(positive)인 생각이 최고라고 누가 덧붙인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저절로 긍정적인 말이 오갈 게 아니냐고 한마디 보태니까 좌중이 숙연해진다. 이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여건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알고 있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 으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positive’는 사전에 긍정적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나오고 확실하거나 낙관적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모두 다 한자어다. 순수한 우리말에는 ‘positive’라는 개념이 없었던 걸까. 사실 ‘posi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