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17

고등어 / 김정기

고등어 김정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인도양을 떠돌던 배에 건져져서 뉴욕 항에 내려진 등 푸른 고등어는 백인 양부모 품에서 자라 보석감정사로 일하고 있다며 급행버스 내 옆자리에 앉아 흰 실로 레이스를 짜는 흑인여자는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기를 손등으로 받아낸다. 은구슬 같은 눈물을 섞어 짜여진 치마를 입고 고향바다 깊은 물속으로 돌아간단다. 그 바닷물에 잠기려고 푸르죽죽한 살결에 반듯한 이마를 들고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42가 사람들 틈으로 헤엄쳐 갔다 오늘 저녁 고등어 살을 저미니 검붉은 피가 흘러 도마에 아프리카 지도를 그린다. © 김정기 2009.10.14

실 / 김정기

실 김정기 어머니는 실을 감으신다. 실타래에 두 손을 넣고 양팔을 벌리면 매듭 지은 것 훨훨 풀어가며 손을 돌려가며 완자 무늬 동백나무 실패엔 물레에서 뽀얗게 뽑아진 무명실이 소복소복 감긴다.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에 반달이 떠오를 때 평생을 다해 한길 걷던 어머니는 실 감기를 멈추시고 길 떠나셨는데 꿈속에선 아직도 대청마루 돗자리 위 모시치마 입으시고 내 손 실타래에서 조선의 곧은 실을 올올이 감아 반도강산 충청북도에서 태평양 물결 건너 뉴욕까지 유전자에서, 노래 가락으로 풀려 나오는 길기도 하여라. 어머니의 실꾸리. © 김정기 2011.08.22

뉴욕의 물 / 김정기

뉴욕의 물 김정기 당신의 하늘에 남보라 잉크를 풀었다 허리춤이 살아나는 관능의 물이 호머*의 포도주가 되어 지중해를 채웠고 물가루가 그 멋에 분해되어 몸속으로 스며들 때 어려운 색깔이 숨죽이며 번져 당신은 한 방울, 유쾌한 뉴욕의 물. 몸속에 숨어있던 파인 구멍을 가볍게 덮어주는 달빛 온기를 잃지 말라고, 물의 씨를 말리지 말라고, 옥구슬이 되어 분만 되는 물방울은 여자에 엮이어 땅으로, 흙으로 스며든다. 스며든다. *19세기 미국화가 © 김정기 2011.04.17

|詩| Deep Scan

뚱뚱한 미국인이 전하는 TV 일기예보 언어의 속도, 언어의 마술 폭설의 요술이 덮치는 뉴욕 1월 마지막 주말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지도 앞에서 뚱뚱한 미국인이 말한다 “여론조사, 여론조사” 그는 다시 말한다 “兩者토론, 兩者토론” 그는 내 이중언어를 급히 해체하고 조립한다 짐승이 우는 소리, 폭설이 앞뜰에 군림하고 있어 기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무서워요 바이러스 제거 소프트웨어가 하드 드라이브를 deep scan 하는 동안 아마존에서 하이킹 슈즈 한 켤레를 주문해야겠어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뒷꿈치에 주홍빛 티눈이 박힌 투박한 카키색 가죽구두를 시작 노트: 언젠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박물관에 진열될지도 몰라. 초현실주의처럼 말이지. 꿈을 토대로 한 예술품을 창작할 수 있지만 '꿈自體, dream-in-itsel..

20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