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날, 맨해튼 50스트릿에 찬란한 시의 꽃이 피었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과의 만남. 우선 그는 나이보다도 젊어 보이고 호남형이었다. 뭇 여성들의 ‘끌림’을 받을 조건을 다 갖추고 있음에도 그가 독신인 이유는 사람보다 시를 더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벽을 잠재울 만한 강도 높은 사랑을 못 만났기 때문일까?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은 미국에 사는게, 아니! 미국에 살면서 글을 쓰는게 때론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등 유명인사들을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것도 뉴욕에 산다는 특권이 아니냐며 흐뭇해했다.
그래서 우리중앙일보 문학교실 뉴저지, 뉴욕회원들은 맨해튼에 있는 퓨전음식점에서 모였다. 대표적인 한국음식을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약간 달게, 덜 맵게 조리해서 우리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음식 문화의 중심에서 우리의 것을 어필하려는 퓨전음식. 시도 이처럼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으면서도 짜릿한 반전이 있고 자유로우면서도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서정적이면서도 신선한 끌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시인의 삶은 결코 평범해서만은 안될 것이다.
이병률시인은 시를 어떻게하면 잘 쓸 수있을까? 하는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시는 열심히 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도를 닦듯이 세상을 멀리 혹은 가까이 대해야 한다. 일단은 시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하루에 일정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서 눈에 심장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집 ‘바람의 사생활’이란 제목을 놓고 실제 사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한국에서의 사생활은 복잡하다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이따금 먼 곳으로 떠나 낯선 곳에서 나를 지우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어서 여행을 다닌다. 뉴욕이 너무 좋아서 살고자 했으나 학비가 너무 비싸서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이번에 새로 나온 ‘찬란’까지 세 권의 시집과 ‘끌림’이란 산문집을 냈으며 2006년도에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사진 에세이집과 시집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뉴욕을 용광로와 같다고 표현했다. 감성적으로 자극시키고 멈추어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3년 전 ‘달 출판사’를 내고 시와 가까이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서 이병률의 마음은 삶과 풍경과 시간 속으로 스미면서 말을 빚어낸다는 표현을 했다.
또 다른 삶과 접하면서 그 시간 속에서 새로운 언어의 배열을 하는 것이 그의 일상적인 작품세계가 아닐까?
허수경시인은 ‘찬란’의 해설에서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끌림’이야말로 이 우주를 지탱하는 완벽한 질서이다. 끌림은 불가해한 ‘영혼의 풍경’을 나타낸다. ‘끌림’은 또한 어떤 존재가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혹은 파괴하려고 하는 혹은 그 두 개의 극적인 양상을 보듬어 안아버리는 음악 같은 것이다. 살고자 하는 눈에 보이는 죽음과 죽고자 하는 눈에 보이는 삶과 같은 그늘에 속한 두 몸, 그 두 몸을 자꾸 끌어 당기는 끌림. 어쩌면 그의 여행을 이렇게 들여다 보는 것도 부질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병률시인은 십여년간의 오랜 여행을 통해 ‘끌림’이란 제목의 산문집을 냈다. 그와의 대담에서 한 시인이 ‘떨림’이라고 잘 못 말했지만 너무나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서 생각만 해도 떨림이 온다고 멋지게 둘러쳤다.
시인이 우리에게 선물한 그의 저서와 우리가 준비한 신간 시집 ‘찬란’에 싸인을 받으며 케익을 자르고 티타임까지 즐긴 후 우리는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갔다.
한 바탕 소란스럽게 단체사진을 찍은 후 젊은 시인과의 한 때를 기념으로 남기려는 욕심들로 저 마다 시인 옆에 다가섰다. 시인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다정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 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그는 이제 뉴욕에 있다. 언제 또 훌쩍 배낭을 메고 자취 없이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뉴욕의 흥미로운 풍경들은 한 동안 그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뉴요커들 속에서 활보하는 시인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김정기의 글동네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 최덕희 (0) | 2011.05.19 |
---|---|
우리 차 이야기 / 최덕희 (0) | 2011.04.26 |
WTC의 참사를 보고 / 전애자 (0) | 2010.09.11 |
반짇고리 / 최덕희 (0) | 2010.08.17 |
가족 이야기 / 최덕희 (0) | 2010.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