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김정기
어머니는 실을 감으신다.
실타래에 두 손을 넣고
양팔을 벌리면
매듭 지은 것 훨훨 풀어가며
손을 돌려가며
완자 무늬 동백나무 실패엔
물레에서 뽀얗게 뽑아진 무명실이
소복소복 감긴다.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에
반달이 떠오를 때
평생을 다해 한길 걷던 어머니는
실 감기를 멈추시고 길 떠나셨는데
꿈속에선 아직도
대청마루 돗자리 위 모시치마 입으시고
내 손 실타래에서
조선의 곧은 실을 올올이 감아
반도강산 충청북도에서
태평양 물결 건너 뉴욕까지
유전자에서, 노래 가락으로 풀려 나오는
길기도 하여라. 어머니의 실꾸리.
© 김정기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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