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의 계절 / 최양숙 다락의 계절 최양숙 인생의 다락에 올라 지나간 시간에 떨군 낙엽을 헤쳐본다 켜켜이 쌓여있는 계절 속에 더 이상 뜨겁지 않은 열정이 흐트러져 있다 소중히 감싸 안았던 자랑도 번져가는 물결처럼 얼룩지고 안타까이 쥐어지지 않던 것도 공중에 흩어진 티끌이 되어버렸다 다락은 소리 없이 노래 부..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1.09.29
비 갠 오후 / 윤영지 비 갠 오후 윤영지 지난 며칠 줄곧 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퀭하니 뚫렸다 빼곡히 차있던 황금빛 가을 물결이 후두둑 젖은 땅 위로 내려앉아 출렁이고 저만큼 더 보이는 하늘 바라보며 나도 이제는 묵직한 걱정을 사뿐한 나뭇잎으로 내려놓는 법을 배우려 한다 드러내는 나무들의 순리와 조용한 당당함.. 김정기의 글동네/시 2009.10.30
|詩| 잎새와의 사랑 번연히 알면서도 은근히 속아주는 속셈으로 더욱 더 심중이 뚜렷해지는 단풍의 시그널이 찌릿찌릿 내게 온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나무잎새와는 진작부터 따스한 혈맥으로 통정해 온 사이지만 잎새의 체온이 차츰차츰 내려가는 낌새를 얼마 전부터 몸소 느낀 바 있다 내 힘으로는 도.. 詩 2009.10.02
|詩| 만보(慢步) 가을이 속보로 행진하고 있어요 바람결에 휙휙 정신 없이 뛰어가네요 나는 가을의 도망질에 반항을 해야겠어요 내 거역감은 만보(慢步)하는 데서 힘있게 솟아납니다 나는 세상에 있는 시간이라는 시간은 다 내것처럼 여유작작하게 가을을 휘적휘적 뒤쫓아가렵니다 비에 젖은 낙엽들이 .. 詩 2008.11.06
|詩| 뼈 뼈가 뼈가 아니다 뼈는 힘이다 골수에서 오는 아픔이다 에너지다 뼈에 따스한 엑스레이가 서리면 그 때 뼈가 진짜 뼈다 죽어 있는 뼈는 뼈가 아니다 사무치도록 당신도 나도 아아 눈부신 엑스레이다 정말이지 당신의 완강한 뼈가 형형한 불덩어리다 낙엽이다 아무리 어루만져 보아도 애지중지 &#169.. 발표된 詩 2008.10.30
|詩| 오 대니 보이 제목도 얘기 줄거리도 모르면서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에 보는 둥 마는 둥 한 케이블티브이 영화가 있었지 신선한 흙을 갓 덮은 무덤 앞 장례식에서 키 큰 남자들 여럿이 굵은 목소리로 오 대니 보이를 노래했어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 詩 2008.10.03
|詩| 낮에 노는 강 강이 재잘대는 강물이 낮 동안 실컷 놀다가 물고기와 더불어 까불며 놀다가 밤이 되면 말도 안 하고 웃음도 그치고 이중인격자 안색으로 슬금슬금 일을 하는 거야 일이라는 게 가만이 보면 바다로 바다 쪽으로만 흘러가는 짓 훌륭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강물은 그 짓을 밤에만 한대나 봐 낙엽은 또 보라는 듯이 낮에만 떨어지잖아 밤에는 끈적한 수액을 몸 속에 똘똘 다진 다음 남은 힘으로 까칠한 가지를 끌어안고 자고 애써 자고 환한 햇살의 위로를 받아들이며 다음 날쯤 휘청휘청 떨어지고요 낙엽이 말이에요 누런 낙엽 한 잎 강물에 술렁술렁 떠내려 가네 그림 같은 낙엽 한 잎 얇은 그림자 낙엽 한 잎이 강물이 재잘재잘 떠들면서 낮 동안 실컷 노는 사이에 © 서 량 2008.09.18 詩 2008.09.18
|詩| 낙엽과 비행기 천길 만길 발 밑 지구 깊은 내부에 듬직한 막대자석이 버티고 누워 힘껏 잡아끄는 중력에 나는 쏠린다 대한항공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한밤에 촘촘한 해상도로 컴퓨터 모니터의 파도는 듬직한 막대자석과 맞붙어 치고 박고 싸운다 물결 세차게 출렁이는 지구 위에 내 어릴 적 비행기과.. 詩 2008.09.06
|詩| 봄의 광끼* 우리들끼리 말이지만 새 봄에는 뭐든지 가능하대요 아까 종려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걸 봤어요 싱싱한 물구나무서기 종달새 쯤은 저리 가라는 거에요 걔네들이 아무리 비상력이 좋다지만 봄에는 또 돌멩이건 지난 가을에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들이고 다 덜렁덜렁 들뜨는 법이래 이놈들이 덜렁덜렁 들뜬다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도 아니야! 하며 내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쳐도 시종일관 막무가내라 시방 저도 봄의 광끼에 몸을 맡겨볼까 하는데, 어때요? © 서 량 2008.04.18 詩 2008.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