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만보(慢步)

서 량 2008. 11. 6. 22:18

       

      가을이 속보로 행진하고 있어요
      바람결에 휙휙 정신 없이 뛰어가네요
      나는 가을의 도망질에 반항을 해야겠어요
      내 거역감은 만보(慢步)하는 데서 힘있게 솟아납니다

       

      나는 세상에 있는 시간이라는 시간은 다 내것처럼
      여유작작하게 가을을 휘적휘적 뒤쫓아가렵니다

       

      비에 젖은 낙엽들이 조용한 비명도 없이
      뒷마당에 겹겹이 쌓여 딩굴고 있어요
      벌거벗은 알몸인데도 결코 추워 떨지 않네요
      흠뻑 비를 맞은 채 땅바닥에 잘 누워있는 잎새들은
      더는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건조한 눈을 두리번거리며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면서
      가을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겠어요
      억지로 눈웃음이라도 칠랍니다

       

      © 시 - 서 량; Besame Mucho: 클라리넷 독주 - 서 량 20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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