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18

|詩| 눈빛

눈빛 -- 마티스 그림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의 초상화”의 리디아에게 (1947) 어쩐지 웃고 있는 눈 노랑 파랑이 반반씩 차지하는 빛깔 절반 정도는 정말 말로 하기가 쉬워요 오렌지색 배경 초록빛에 싸여 긴장하며 진동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참 따스합니다 詩作 노트: 러시아를 혈혈단신 탈출한 리디아 델렉트로스카야. 1932년, 22살에 마티스 스투디오의 도우미로 고용된다. 그녀는 1941년에 소장암 수술을 받은 후 마티스가 불편한 몸으로 활동을 계속하다가 84살에 사망한 1954년까지 그의 곁에서 20여년동안 스투디오와 갤러리를 운영한다. 둘의 나이 차이는 40살. 마티스의 부인은 1939년에 가정을 떠난다. 시베리아 소아과의사의 딸 리디아. 파리 소르본 의대를 다니다가 학비를 대지 못해 중퇴한다. 마티스의..

|詩| 그림자

그림자 -- 마티스 그림 “분홍색 누드”의 여자에게 (1935) 다리 괄호 속 두터운 다리 더운 다리 한쪽 팔은 누운 빌딩 다른 쪽은 수제비 쪼가리 마티스는 여자를 그리지 않고 마티스는 마냥 그림만 그렸어 벌거벗은 여자가 둘이다 하나는 주홍색 여자 하나는 그림자 여자 詩作 노트: 마티스의 명언이 나를 움찔하게 한다. “I don’t paint women… I paint pictures.” 그는 여자 肉體와 겹쳐진 靈體까지 그렸다. 내 눈에 분명히 보인다. © 서 량 2023.07.14

|詩| 내 그림자

어느 날 내 그림자가 휘청거리는 장면을 보았다 무형도 유형도 아니면서 연신 변덕을 부린다 누군가 저를 살펴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태평한 동작! 내가 점잖아지면 저도 차분해지고 내가 까불면 금세 팔짝팔짝 뛰논다 그는 찬 바람 몰아치는 봄밤이면 내 등때기에 바싹 들러붙어 내 육신의 명맥을 잘 이어주는 본심을 알 수 없는 동물이었다 지금 잠시 어디로 외출하고 없는 내 그림자가 그립다 시작 노트: 16년 전에 멋모르고 쓴 시를 지금 새삼 살펴본다. 그때도 내 동물뇌와 인간뇌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잘난 척하면서 분별심을 발휘하는 나는 또 누구냐. 나도 내 그림자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을 뿐. - 2023.02.28 © 서 량 2007.07.26 -- 뉴욕..

발표된 詩 2023.03.01

밝은 그늘 / 김종란

밝은 그늘 김종란 흘러 가는 중에서 하늘 구름 한 켠 눈빛 튤립을 지나서 반듯한 얼굴을 지나서 으스러지는 뼈를 지나서 여름의 옷깃을 스치며 흔들리다 흔들리다 흔들리는 세찬 바람 가득 안은 작은 얼굴들을 지나서 독 묻은 말들을 지나서 당신의 어눌한 그림자를 지나서 나무 그늘 숲 그늘 일렁이며 흔들리듯 춤 추는 빛이려니 © 김종란 2015.05.29

억새꽃 / 김정기

억새꽃 김정기 십일월이 떠나는 들녘에 서서 꽃을 피우는 친구여 밤마다 그림자가 나온다 연기가 나온다. 눈에서 입에서 버렸던 사람이 다시 찾아와 눈이 날리면 만날 수 있다고 알 수 없는 슬픔의 발원지에 힘든 나날을 이겨낸 나를 찾는 손짓이다. 늦가을 억새꽃으로 피어 바람을 타고 가는 길을 막는 손 물기 빠진 몸이 발붙인 웅덩이에서 물거울을 꺼내 본다 가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는 그림자도 연기도 꽃이 되는 나이. © 김정기 2011.12.01

숨은 새 / 김정기

숨은 새 김정기 창공이 무섭다. 썩은 어둠을 두르고 작아지는 날개를 움직인다. 발톱에 찍히는 바람의 무늬 오그라들어 점 하나로 남는 공간. 숨어서 껴안는 작은 그림자들이 빛나고 우리가 함께 버렸던 하늘이 흙이 되었던 비밀을 일러주는 색깔들. 뒤꼍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다시 자라는 날개가 꿈틀거린다. 달빛의 힘줄을 딛고서. © 김정기 2010.06.08

|詩|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신(神)을 폭행한 사람들 여럿 문 쪽을 향하여 엘리베이터 안에 단정하게 서 있다 당신은 빨리 흥분한다 초록이 극명하게 투명해지는 순간 두 남녀가 키스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아노 반주에 첼로가 독주하는 굵은 멜로디 배경음악 내가 살지 않은 내 삶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 의무의 족쇄를 벗어나는 최면술의 꽃이 피어난다 몸이 통통한 안나 오와 목이 긴 루 살로메가 풀밭을 걷고 있어요 눈물은 감정 완화 감정 빚의 탕감, 눈물은 달콤해 정말 이제 니체의 눈물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When Nietzsche Wept: 현 스탠포드 명예교수인 실존주의 정신과의사 Irvin Yalom (1931~ )의 소설. 같은 제목으로 2007년에 영화가 나옴. Nietzsche, Breuer, Freud, Lou Salome..

2021.11.18

|詩| *하고재비

그늘에서 울려오는 소리 뒷마당 떡갈나무 잎새 검푸른 그림자 떨림 마구잡이로 심계항진을 일으키는 떡갈나무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말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릇푸릇하기만 하더니 이제 빨리 흥분하는 우거진 녹음의 자유분방 그늘진 잎새가 푸르름의 합창을 묵음처리 합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며 초록을 부추기는 소리 마침내 확연히 들려요 떡갈나무 몸체가 사납게 내지르는 탄성, 수목의 본성! * 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경상도 말 © 서 량 2021.05.16

202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