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57

|詩| 내 겨울詩는 음산하다

사람 없는 뉴저지 북부 해변에 지금 당장이라도 가 보면 알 수 있다 무작정 비상하는 생명들이 남기는 흔적 그 빛들이 즉각즉각 화석으로 보존되는 당신 의식 속 가장 내밀한 공간에 가 보면 발바닥에 밟히는 뿌리 깊은 모래알이 깔깔해요 귀청 따가운 겨울 파도의 아우성이 당신 앞머리를 들뜨게 하는 뉴저지 북부 해변을 걸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리 해신(海神)의 숨소리가 귓불을 덥히는 동안 황금사과를 내가 매장시킨 가을이었더라도 노란 금가루를 떨치며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도저히 잡지 못할 거예요 내 알뜰한 상상 밖으로 총알보다 빠르게 호랑나비 한 마리 날아간, 뉴저지 북부 가장 은밀한 해변에 오늘이라도 차 몰고 가 보면 대뜸 알 수 있다 © 서 량 2009.01.26 www.korea..

발표된 詩 2024.01.30

넷이라는 숫자 / 김정기

넷이라는 숫자 김정기 여덟에 매어서 넷까지 덩달아 좋아했던 길 그 길가에 차 네 대가 주차하고 하필 그 네 번째가 새로 뽑은 차 8444일 때 네것 내것 가릴 것 없이 한참동안 황홀해짐을 누가 막으랴 꿈이 넷이라면 둘까지도 아끼며 걸어 온 길에 아직도 자갈들 구르지 않고 이끼 묻어 비바람 뜨거운 볕 당해내고 있으니 둘을 버리고 넷을 버리고 여덟까지 내던지고 앉은 섣달 초승 그래도 오늘아침 싸락눈이 잠깐 내리고 참새 떼가 마을로 날아 들더라 위트니 박물관에서 백 년 전 나뭇잎들을 쓸어 담아가지고 집에 와서 쏟으니 네 바구니 여덟 바구니를 채우려면 또 한 번 가 보아야 하겠네 세모의 어느 토요일 아침 어떤 백인 노부부처럼 품위 있게 손잡고 거기는 여덟층이 없으니까 사층에서 맴돌자 선으로 색으로 엉클어놓은 사..

*흰 러닝셔츠 / 폭설 -- 김종란

흰 러닝셔츠 / 폭설 김종란 죽은 듯 침대에 누운 겨울 입김 후 불면 거울에 드러나는 겨울 침대 끝에 떨어져 있는 마른 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옮기는 마른 발걸음 이미 높이 자란 사유의 나무에 기대어 땀 닦아 내는 푸른 웃음 해 기울도록 마룻장 걸레질 하는 동안 다시 해 떠올라 온 종일 물 긷는 동안 자유로이 거울 안 바람 소리 시원하고 글 쓰는 소리 사각인 다 잠시 몸 비워 두고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거울 흰 러닝셔츠 바람 글 쓰는 어깨 위로 폭설이다 *잠시 겨울에 잠든 김기천 시인에게 © 김종란 2015.01.19

겨울나기 / 김정기

겨울나기 김정기 바람 소리 몸속으로 스며들어 찬물에 손을 씻고 밀봉된 연서를 뜯어보는 영하의 밤 우리는 흘러간 것들 때문에 밀려오는 것을 밀어 내며 불을 지핀다 얼지 않은 바다를 건너 참나무 장작 불꽃이 되어 타 오르는 그는 시인은 영웅을 닮아 운명과 대결하며 끝없이 싸우다가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고 그럴 때 빛나고 아름답다고 이처럼 매혹적이고 장엄한 것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朔風도 영어로 불어오는 땅 아!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내가 사는 웨스트체스터를 달구고 있다 덩달아 나도 뜨거워져서 껴입은 옷을 벗어 휘영청 떠 있는 달 위에 걸며 겨울을 난다. © 김정기 2011.01.18

겨울 포도 / 김정기

겨울 포도 김정기 몸을 핥는 땅은 섬뜩한 칼날이다 맨살 위에 새겨진 황토 흙의 흠집이다 허물 벗는 세포들의 몸부림에 흰빛 하늘이 내려와 어깨를 덮는다 돌아서는 지구의 혓바늘에 소금을 뿌리며 굳은 것은 이렇듯 쓰라린 것이다 아리고 뜨거운 것이다 살갗으로 데운 시간이 질척인다 침묵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떠나는 그대의 언 옷을 부여잡고 산 위에 떠 있는 노을을 적신다 낮아지고 낮아지는 겨울을 말린다 © 김정기 2010.12.22

겨울 소나타 / 김정기

겨울 소나타 김정기 이름 모르는 나무들이 다리를 절며 도시에 모여 든다 어둠은 때때로 살을 저미고 홀로 부르는 노래되어 처음 보는 겨울 숲을 건넌다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파두(fado)*를 들으며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던 당신 식탁에 물이 끓는다 모두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일 때 그래도 당신은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섬광 같은 일별(一瞥)이지만 갑자기 겨울은 환해졌다 겨울 나그네는 모닥불을 지피고 빛나는 것 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감당할 수 없는 계절이 노래가 된다 고요하게 덮이는 겨울 소나타에 목을 추기며 겨울을 맞는다. *폴투갈의 전통 유행가 © 김정기 2011.01.11

바람모자 / 김정기

바람모자 김정기 남빛 바람모자 쓰면 겨울하늘을 나를 수 있네 잔가지 쳐버린 우리 집 나무들 틈을 비집고 탱탱하게 부은 구름 떼 속으로 솟아올라서 끝내 사라질 것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바람의 손을 잡겠네 만질 수 없는 모자챙에 꽃을 달고 비도 눈보라도 뙤약볕도 막아버리고 세상에서 도달하지 못한 나라에서 곤히 잠이 들겠네 바람에 몸을 매달고 먼 곳으로 떠나서 그 빛나는 우주의 맨살을 만나 얽히고 설킨 이야기 풀겠네. © 김정기 2010.11.30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흰 눈 벚나무 김종란 벚꽃 어리는 눈 핏발이 서린 겨울이네 흰 눈 벚나무 수정 빛 여행가방 손잡이 알맞게 누그러졌으니 가볍든지 무겁든지 무릎 꿇고 양말을 개며 바지 탁탁 털어 접으며 오늘의 수업 마치고 목숨의 한 부분 말끔히 지운다 살아있어, 그 신비로움으로 뭉싯거리는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낮고 짙은 회색 구름속에서 이무로이 찰라의 것들 낌새를 훔쳐내지 눈을 찌그려라도 뜨고 응시하면 물꼬가 터져 흰 눈 벚꽃이 진다 검붉은 열매가 드러난다 살아있어 봄 겨울에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2011.02.06

나비를 잡으려 한다 / 김종란

나비를 잡으려 한다 김종란 43 쪽 선박여행을 하며 피곤한 듯 의자에 깊숙이 앉아 바라보는 옛 시선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권태로워 하며 여행에 지친 눈 어깨 웅숭그리고 어둡고 서늘한 겨울 품 안 서성이다가 들추어보는 인도차이나의 녹색 대양 날개 잠시 접은 나비 둔중한 선박에 깃털보다 가벼웁게 내려앉는 백년 전의 항해 그의 마음 깊이 내려갈 수 있기를 그의 영혼이 울리는 종소리 들을 수 있기를 나비를 잡으려 한다 포충망에 걸린 나비와 자유로이 날아간 나비 선명한 문양으로 몽환적인 색감으로 그를 숲의 적막으로 불러드린 나비 융의 정신분석 사잇길과 혼돈의 세계를 아주 낮게 날으며 섬찟하게 달콤하게 무연하게 날아갔다 시간은 무작위적이었으나 © 김종란 201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