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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123. 이름에 대하여

이름에 대하여 자고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거늘, 그 풍조를 좇아 우리는 명문대학을 추구하고 명품을 밝히는 관습이 있다. 하다 못해 얼마 전에 무심코 본 티브이 광고에서도 '김치도 명품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며 의미심장하게 술회한다. 이 발언은 꽃도 관등성명이 분명해야 꽃답다는 엄청난 성명서처럼 들린다. 반면에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1597) 2막 2장에서 줄리엣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파한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詩| 허드슨강 무지개

허드슨강 무지개 누군가 언젠가 말하지 않았던가미안한 마음 없이 생각도 없이Green turtle 등 푸른 거북이Hammerhead shark 망치머리 상어 마음놓고 하늘을 헤집는 당신이며다 화려한 환상이라고 까만 배에 노란 줄이 죽죽 간 열대어처럼 詩作 노트:허드슨강 바닥 깊숙이 환상 속 당신이 숨어있다. 비 개인 후 솟아나는 무지개를 보면 알 수 있다. © 서 량 2015.06.16

2025.06.17

|컬럼| 122.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동양인은 언행이 조신하고 근엄한 반면 서구인은 신중하지 못하고 가볍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것은 동양인들은 목에 힘을 주는 권위주의를 신봉하지만 양키들이 워낙 꾸밈이 없고 소탈한 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엄숙함이 지나치면 따분해지고 사람이 너무 꾸밈이 없으면 경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가볍다(light)'는 고대영어의 'leoht'에서 유래했는데 '무겁다(heavy)'의 반대말로서 가볍고, 쉽고, 재빠르다는 뜻으로 16세기 초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마저 파생됐다. 당신의 양키 친구가 "Don't you think light of my feelings!"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의 감정을 얕잡아 보는데 대한 항변으로 받아들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누가 "I have a he..

|컬럼| 121. 김치의 역사를 찾아서

김치의 역사를 찾아서 “My salad days, when I was green in judgment: cold in blood,” – “내 풋내기 시절, 판단이 미숙하고 피가 차가웠던 시절,” -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앤서니와 클레오파트라」(1606)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의 대사다. 'salad days'라는 표현은 아직도 현대영어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샐러드 시절'은 '푸성귀 시절'로 직역할 수 있다. 푸성귀는 왠지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신선한 채소는 식물왕국의 영계에 해당된다. 일찍이 의술의 태두 히포크라테스(BC460~BC370)는 야채가 소화기를 쉽게 통과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주식(主食) 전에 먹으면 음식의 침체현상을 막는다고 설파했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우선 샐러드를 많이..

|컬럼| 120. 사랑의 약속과 도발의 심리학

사랑의 약속과 도발의 심리학 "... and as he moved, a small provocative smile curved her lips. "Going my way, soldier?" she murmured." -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약간 도발적인 미소가 그녀의 입술을 맴돌았다. "병사님, 제가 가는 길로 가시겠어요?" 하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 글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어 교과서에 나왔던 'Appointment with Love, 사랑의 약속'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엊그제 추수감사절에 친지 몇 명을 초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밑도 끝도 없이 그 문장이 기억에 떠올랐다. 이것은 북한의 김정일이 11월 23일에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은 짓을 '도발' 행위라고 명명한 한국 언론에 대..

|컬럼| 119. 삼천포로 빠지다

삼천포로 빠지다 1773년 12월 16일에 보스턴의 급진주의자들이 영국의 세금정책에 반대하기 위하여 보스턴에 입항한 영국상선에 탑승하여 차(茶)를 뭉터기로 바다에 던지는 난동을 부렸다. 그 사건을 이름하여 'Boston tea party'라 했는데 근래에는 'Boston'을 빼고 그냥 'tea party'라 한다.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을 형편없이 압도한 것도 급진적 보수세력인 'tea party group'의 공헌이 컸다는 보도다. 'tea party'는 보스턴에 관련된 미국 역사를 모르면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우리말에 누가 어디를 간 후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 '함흥차사'라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 쿠데타를 두 번이나 일으켜 이복 형제들이며 피 비린..

|詩| 조지 워싱턴 브리지

조지 워싱턴 브리지 철제의 기둥이 쓰러지며 당신을 덮듯동쪽을 지배하는 세찬 기력뉴저지를 스치는 낙동강 물결이여바람결 허드슨 강에 흩어지며 코 앞에 살아나는 샛노란 꽃잎 나리 나리 개나리 숨결이다 철제의 기둥이 신음하며 당신을 달래듯하늘을 감싸는 낙동강 그림자여내 아버지의 시퍼런 청춘이여 詩作 노트:2001년 첫 시집에 내놓은 이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 수를 많이 줄이고 고쳤지만. 아무렴, 역시 나는 나다. © 서 량 2025.06.14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