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21. 김치 연구 보고서

서 량 2010. 12. 12. 23:38

 My salad days, when I was green in judgment: cold in blood, -- 내 풋내기 시절, 판단이 미숙하고 피가 차가웠던 시절, -- 이것은 쉐익스피어의 「앤소니와 클레오파트라」(1606)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의 대사다. 'salad days'라는 표현은 아직도 현대영어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샐러드 시절' '푸성귀 시절'로 직역할 수 있다. 푸성귀는 왠지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신선한 채소는 식물왕국의 영계에 해당된다.  

 

 일찍이 의술의 태두 히포크라테스(BC460~BC370)는 야채가 소화기를 쉽게 통과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주식(主食) 전에 먹으면 음식의 침체현상을 막는다고 설파했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우선 샐러드를 많이 먹어서 우툴두툴한 소화기의 자갈길에 육중한 쇠고기가 무난하게 지나가게끔 아스팔트를 깐다는 비유도 좋으리라.

 

 'salad'  14세기경 라틴어와 고대불어에서 '소금(salt)'이라는 뜻이었다. 서구인들은 싱거운 채소를 소금에 절여 식초, 올리브 기름, 마늘가루 등등 드레싱을 무쳐먹었던 것이다. 샐러드는 그들의 김치였다.

 얼마 전 MBC 뉴스데스크에서 김치에 관하여 학계의 발표가 있었다. 그것은 고추가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기록 때문에 우리의 김치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쯤 전에 개발됐다는 통설을 크게 흔들어 놓은 아주 새로운 견해였다.

 뉴스데스크는 또 고추가 오히려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여러 일본문헌 기록에 초점을 모았다. 임진왜란 이전 우리나라 문헌에 한인들이 고추로 술을 만들어 마셨다는 놀라운 기록 또한 보고했다.

 기원전 10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의 소아(小雅)편에 이런 시 구절이 실려있다. -- '밭 두둑에 오이가 열렸다. 오이를 따서 '()'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의 복을 받는다'.-- 이때 '(: 김치 저)'는 오이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현대의 오이지(pickle)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치는 그렇게 기원전 문헌에 오이김치로 늠름하게 등장했던 것이다. 

 우리의 고구려, 백제, 신라도 벌써 간장, 된장 내지는 젓갈류가 중요한 일상식품이었다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우리의 '()'는 대부분 오이나 무가 주류를 이루었다.

 독일 사람들도 채소를 발효시켜 갈무리한다. 'sauerkraut(배추 절임)'이 바로 그것인데 당신이 좋아하는 'hot dog'에 두루두루 얹어 먹으면 입맛이 절로 나는 발효야채다. 'sauerkraut'는 현미의 노래에서처럼 시큼한 '총각김치'가 아닌 시큼한(sauer=sour) 배추라는 의미다.

 양키들의 김치에 해당하는 식품으로 새콤달콤한 'coleslaw'도 있다고 우겨보는 것도 괜찮다. 'coleslaw'는 홀란드 말 'koolsla'로서 '배추샐러드'라는 뜻. 인류가 배추 없이 어찌 살까 싶다.

 'pepper'는 '후추'고 'red pepper'가 '고추'다. 'salt and pepper'라는 표현은 나 같은 한국인에게 김치를 연상시킨다. 이것은 '소금과 후추'가 아니라 중년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상태를 그린 말이다. 'salad days'와는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 가라사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했거늘. 소금에는 영혼을 침범하는 악을 퇴치하고 방지하는 효능이 있다는 서구적 속설이 있다. 소금도 마늘처럼 항균작용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조류 독감을 예방하는 데 김치가 좋다던 수년 전 세계뉴스를 기억하는가. 소금이여 영원하라. 그리고 김치여 부디 영원하라.

© 서 량 2010.12.12

-- 뉴욕중앙일보 2010 12 1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