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간다. 젊은 여자, 은퇴한 대학교수, 급하게 라면을 먹고 편의점을 나온 대학생, 정치적 이념이 강한 중년 남자, 또는 겁 없는 무신론자들이 제각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간다.
마스크는 2020년 3월 현재 중국 우한이 발원지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내는 방패막이다. 마스크는 투구를 쓴 고대의 병사들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적군의 화살을 막으려고 방패로 몸을 가리는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마스크는 절대절명의 구명책이다.
마스크는 은성한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소박한 가면이다. 마스크는 자신이 포식동물의 먹거리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할로윈데이 가면의 무서운 이미지로 전달한다. 마스크는 포식성이 강한 상대방을 혼동에 빠뜨려서 내 안전을 꾀하려는 방어책이다. 마스크는 스모크 스크린이다.
마스크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 마스크의 품절 상태를 놓고 우리는 절망한다. 마스크의 부재현상에 대하여 패닉 하지 말라며 민중을 무마하는 위정자를 불신하는 법을 배우는 우리다. 마스크는 더 이상 외출하는 당신의 얼굴을 덮어주는 물질명사가 아닌 하나의 은유로 탈바꿈한다. 마스크는 이제 사라지는 신뢰와 살아나는 증오의 증표이면서 한 국가의 위상과 정국을 좌우하는 추상명사다.
마스크는 한때 당신과 내가 하루쯤 쓰고 난 뒤 무심코 쓰레기 통에 던져버리는 일회용 소모품이었다. 마스크가 희귀 품목이 된 정국에 먼 나라의 유연한 마스크 유통 광경을 분석한 결과를 읽는다.
마스크 국내 생산업체에게 대만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가 무섭게 마스크의 해외수출을 금지했다는 보도에 우리는 조용히 경악한다. 마스크의 엄청난 국내 수요가 느껴질 때 중국에 마스크를 대량 보내준 우리의 정치적 풍토와 심각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마스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증상 보균자가 감염력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감염지역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짧거나 긴 시간 동안 싫든 좋든 자신과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꼭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식이다.
마스크를 웬만큼 쓰지 않아도 좋다는 둥, 마스크를 빨아서 다시 써도 괜찮다는 둥, 저 자신은 마스크 없이 다니니까 너희들도 그러라는 둥, 위정자들은 변명과 궤변의 마스크로 양심을 덮으면서 비판을 회피한다. 마스크는 눈 감고 아웅하는 위장전술이다.
마스크는 16세기 중세 라틴어 가면, 복면, 유령, 악몽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었고 이 네가지 뜻 중 처음 둘은 현대영어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마스크는 18세기 초에 군대에서 숨거나 군대시설을 은닉한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마스크는 또 동서 고금을 통하여 전 여성이 애용해 온 ‘속눈썹이 짙고 길어 보이도록 칠하는 화장품’, ‘마스카라’와 말의 뿌리가 같다. 마스크는 자기방어와 이성을 유혹하는 화려한 화장술을 겸비하는 생존본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스크가 당신과 나의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마스크가 꼭 무슨 역경의 전주곡은 아닐지도 몰라. 마스크 강박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뇌리를 흉측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그림자가 악몽처럼 스치며 지나가는 봄날이다.
마스크는 인근 약국이나 마트에 비장된 실존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상이다. 마스크는 본질적으로 육체를 지배하는 심리작용이기도 하다. 마스크는 내 육체와 정신의 안존을 음해하는 외부자극을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패다. 마스크는 심리적 폐쇄병동에 자신을 기꺼이 격리 수용하는 심신이 노곤해지는 자폐증의 위안이다.
© 서 량 2020.03.08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3월 1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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