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61. 말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

서 량 2020. 4. 20. 08:43

 

-- 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 (Nietzsche) -- 삶은 시달림이다.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 시달림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니체)

 

제임스가 죽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망원인이었다. 몸이 뚱뚱하고 지능이 남들보다 많이 낮은 반면에 성격이 참 원만했던 제임스가 엊그제 죽었다. 내가 묻는 말은 전혀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아무 결론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해도 늘 좋은 기분을 남겨주는 병동환자였다.

 

내과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저도 제임스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나는 코로나 환자와 가족과 응급실 의사들의 미치광스러운 나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지구촌이 고통에 시달리는 2020년 봄이다.

 

매일 아침 병동 문을 밀치고 들어설 때마다 직원들 중에 무증상 감염자와 바이러스 전파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심한 긴장감이 엄습한다.

 

‘suffer’는 13세기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서 어떤 일이 ‘지속해서 일어나다, 벌을 받다, 견디다, 고생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전인도유럽어에서는 ‘임신하다’는 뜻이었다. 당신과 나를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survive’는 15세기 중반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남보다 더 오래 산다(outlive)’는 뜻이었다가 나중에 역경을 견디어 넘는다는 뜻이 됐다. 찰스 다윈 진화론에 나오는 ‘survival of the fittest, 적자생존’! 바로 그 ‘생존’이다.  

 

니체의 발언, ‘시달림의 의미’는 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발상이다. 언어철학의 기반을 세운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이런 따위의 어려운 명제를 강하게 일축한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 – 그는 인류에게 언어의 한계성을 일깨워 준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리고 얼마 후 사르트르(1905~1980)를 위시한 실존주의자들은 우리 삶의 기쁨과 즐거움의 뒷전을 졸졸 따라다니는 고통의 그림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까칠하게 설명한다.

 

철학은 의미를 추구하지만 의학은 원인을 파고든다. 나 또한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된 최초의 원인과 경로가 매우 궁금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질문은 침묵으로 응수할 만한 논제가 아니다. 정직한 반응은 ‘모른다’지만 정치가들은 여러 가능성과 의심을 내세운다. 어쩌면 2020년 코로나 사태에 대한 유력한 대처 방법은 정치적인 각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는 2018년에 발간한 그의 최근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인간은 팩트, 숫자, 또는 공식보다는 스토리로 생각한다. 그리고 스토리는 단순할수록 좋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스토리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야기에도 기승전결과 자초지종을 내세우는 인간의 천성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올해 44살의 하라리는 종교와 과학마저 스토리텔링의 범주에 속한다고 깐깐한 모범생처럼 지적한다. 우리가 내세우는 너절한 ‘팩트’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한 교묘한 가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한 사람의 삶 또한 스토리라는 생각에 잠긴다. 당신과 나는 역사의 흐름에 합세하는 네버 엔딩 스토리텔링이다. 우리는 다 신화이거나 동화다. 당신의 삶이 자신과 남들을 위하여 단순하고 재미있는 스토리이기를 바란다.

 

 

© 서 량 2020.04.19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4월 22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234633

 

[잠망경] 말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

- 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Nietzsche) - 삶은 시달림이다.

www.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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