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62. 소통, 쇼통, 또는 소똥

서 량 2025. 11. 1. 14:05

 

소통, 쇼통, 또는 소똥

 

병동환자 로버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 모두 스트레스가 심한 판국에 약을 먹겠다니? 아무래도 법정에 가서 판사가 내리는 결정을 따라야 되겠다.”

 

환자의 인권존중 때문에 강제 투약은 법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전에도 법원의 강제 치료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그는 걸핏하면 자기가 젊었을 보디 빌딩을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셔츠를 들어올려 거북이 배처럼 희미하게 금이 복근을 증거로 제시한다.  

 

린다 맥칼리스터(Linda McCallister) 저서, “I wish I’d said that, 내가 그걸 말했었으면”(1992) 나온 대화방식 여섯 가지를 여기에 이렇게 간추린다.   

 

귀족형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어린아이가임금님이 빨가벗었다했던 말이 좋은 . 대로 느낀 대로 하는 황당한 화법이다.

 

소크라테스형문답식으로 사태를 설명하고 어떤 해결을 모색하는 대화방법. 남을 가르칠 쓰인다. 정신과의사들도 종종 수법을 쓴다. 깐깐한 대화절차.

 

반추형대화의 흐름과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마음가짐. 절대로 상대방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정도가 심한 경우에 화자는 무골호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집정관형단호한 발언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 다분히 독단적이고 독재적이다. 군대 지휘관이나 CEO 스타일. 고집불통의 직장 상관!

 

후보자형끊임없이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화자는 쉬지 않고 말하는 동안 세상이 평온하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입에 침을 튀기는 수다쟁이!

 

상원위원형뚜렷한 목적이 있는 침묵을 고수한다. 사실 이들은 본심을 숨기기 위하여 말을 한다. 차분하고 계산적이면서 내숭스러운 화법.

 

그날 로버트와 이야기를 나눌 내가 얼떨결에 사용한 대화법을 이렇게 분석한다. 귀족적 20%, 반추적인 태도로 관계유지 노력이 40%, 집정관다운 단호함이 10%, 상원위원 같은 본심 감추기가 30% 섞여졌던 것이다. 그때 상황에는 소크라테스형 문답이나 후보자형 수다스러운 수법이 들어설 틈이 전혀 없었다.

 

로버트의 화법은 어떠했는가. 그의 언어는 정신과에서 말하는형태적 사고장애, formal thought disorder’ 범벅이었다. 자기가 힘이 세다는 증거로서 거북이 복근을 과시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심하게 아프게 한다. 그와 사이에 외에 어떤 의미심장한 의사소통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로버트는 나에게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지 않고 이른바 쇼통(show) 셈이다. 또한 그쯤해서 화제의 본질을 망각한 , “, 젊었을 깨나 썼었구나!” 하며 감탄하듯 응수했다. 이렇듯 필요한 대신 부질없는 말만 늘어놓는 대화를 ‘bullshit’이라 한다.

 

‘bullshit’헛소리 번역하지만 ‘shit, 합쳐진 말이기 때문에 듣기에 거북살스러운 비속어다. 말을 내뱉는 순간 당신은 이상 지성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 한담(閑談)이라는 묵직한 한자어가 있지만불쉿 풍기는 짜릿한 뉘앙스가 없어진다.

 

‘bullshit’의 ‘bull’은 ‘황소’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은 고대 불어 ‘bole’에서 유래한 ‘가짜, 사기’라는 뜻이었다. 로버트와 짧은 대화를 마친 후 마음이 잠시 어두웠다. 그와 나는 소통이 아닌 ‘소똥’을 한 것이다.

 

© 서 량 2020.05.03

뉴욕 중앙일보 2020년 5월 6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www.koreadaily.com/article/8269251

 

[잠망경] 소통, 쇼통, 또는 소똥 | 미주중앙일보

병동환자 로버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우리 모두 스트레스가 심한 판국에 약을 안 먹겠다니? 아무래도 법정에 가서 판사가 내리는 결정을 따라야 되겠다.” 환자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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