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혈관
김정기
볕 잘 드는 툇마루에서
졸다가 깨다가
눈 속에서 깨어난 달래 순을 만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개 숙여 어떻게 참았는지
아직도 남았을까 그대의 향내가
땅이 흔들린다
명주실 풀어놓은 햇살에 몸 담그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달콤한 잠에 빠진다.
콸콸 흐르는 도랑물에 우리는 발을 씼었지
어둠 저편에서 쏟아지는 빛이 고여 흘러간다.
봄은 언제나 흙속에서 헤모글로빈을 싹 틔우고 있었지
끝내 되돌릴 수 없는 미로를 걸어가서
이슬비가 스며든 산수유 잎을 만지네
그대가 돌아오는 저녁을 되돌려서
겁도 없이 방문한 들판에 비석을 세우고
먹어도 지독하게 허기진 이 땅에서
눈 녹은 물이 출렁이는
봄의 핏줄은 차고 맑은 눈물이네
© 김정기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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