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샌들을 신은 여자 / 김정기

서 량 2023. 1. 14. 18:01

 

샌들을 신은 여자

 

                           김정기

 

친구가 켜준 촛불도

아들이 보내 온 꽃들도

며칠이 지나니 흐늘거린다

 

에드워드 하퍼는

내가 태어난 해 뉴욕의 극장가 남빛 드레스에

샌들을 신은 여자를 그렸다 

 

여자는 칠십 사 년이나 샌들을 신은 채 서있고

밟은 땅을 파고 또 파면

충청북도 내 친구네 사과밭 어귀에

구멍이 날수도 있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풀어진 샌들 끈을 옥조이면서

선연한 사랑에 기절하는 도대체 저 여자가 낚아챈

마지막 설렘은 무엇인가

끝 간데없이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동갑내기의 쓸쓸함인가

 

아직도 젊은 날의 약속을 믿고

그 자리에 서있는 여자의 발엔

촛불이 켜지고 꽃들이 살아날 듯

팽팽한 샌들이 신겨 있다 

 

© 김정기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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