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을 신은 여자
김정기
친구가 켜준 촛불도
아들이 보내 온 꽃들도
며칠이 지나니 흐늘거린다
에드워드 하퍼는
내가 태어난 해 뉴욕의 극장가 남빛 드레스에
샌들을 신은 여자를 그렸다
여자는 칠십 사 년이나 샌들을 신은 채 서있고
밟은 땅을 파고 또 파면
충청북도 내 친구네 사과밭 어귀에
구멍이 날수도 있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풀어진 샌들 끈을 옥조이면서
선연한 사랑에 기절하는 도대체 저 여자가 낚아챈
마지막 설렘은 무엇인가
끝 간데없이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동갑내기의 쓸쓸함인가
아직도 젊은 날의 약속을 믿고
그 자리에 서있는 여자의 발엔
촛불이 켜지고 꽃들이 살아날 듯
팽팽한 샌들이 신겨 있다
© 김정기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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