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여름 형용사 / 김정기

서 량 2023. 1. 14. 18:28

 

여름 형용사

 

                       김정기

 

여름 한낮에 움직이는 고요는

한마디 형용사다.

언제나 뒷그림자에 숨은 여린 얼굴도

그늘에 일렁이는 영화 장면이 된다.  

 

멀리 있는 줄 알았던 팔월도 눈앞에 다가서니

벌써 나는 얼마큼 와 있는지.

아까워하던 아침저녁의 노을도

시름시름 가던 날도 정오의 뙤약볕에 뛰어간다.

진작 간수하지 못한 나날도 녹아 흐른다.

헐겁게 빠져나간 외로움까지도 찾을 수 없는 한낮

 

등을 보인 친구에게 여름을 주려고 손을 내민다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기에

더 환하고 더 부드러운 것이 없기에

 

맞바람 치는 창가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바람에 실려 오는 풋내

여기서 모두 정지하기를

거둘 것이 아직 있으면 나누기를

 

지금 땅 밑에도 여름볕 밝게 드리워

주황색깔 나리 꽃잎 지는

여름 형용사

 

© 김정기 20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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