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나팔수 / 김정기

서 량 2023. 1. 13. 19:07

 

나팔수

 

                   김정기

 

나팔 소리에서 은가루가 부서져 내린다.

몸에 있는 공기는 모두 빠져나가고

홀쭉해진 세포마다 소리가 난다.

나팔을 불면 떠난 사람이 돌아온다.

나팔 부는 사람은 나팔로 말한다

길게 늘어지게 나팔을 불면서 세상을 돌면

세상에 숨어있는 그대의 숨소리가 들린다.

음정마다 뽀얀 망토를 입고 텅텅 빈 몸으로

흐린 거울 속에 얼 비취고 있는 목소리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온몸에 피가 나팔로 빠져나가도

그대가 그 소리 들을 수 있다면.

나팔을 입에 물고 거리로 달려 나가겠네.

흰 눈 같은 은가루를 뒤집어쓰고 터진 허파에

바로 그 나팔수 안에 그대가 숨어있네.

 

© 김정기 201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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