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맨 그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김정기
모든 시간을 냉동했다가 다시 펼칩니다
캄캄한 절벽도 지나 햇볕 드는 아침도
달뜨는 밤도 함께 맞아요.
휘영청 하늘에 몸을 기대어 궁전에 디딘 아픈 발
단아한 당신의 붓으로 뜨거운 조선의 피 찍어내고.
수런거리며 하루하루가 문 앞에 당도 할 때마다
아직도 꿈꾸는 당신의 눈물로, 하늘위에 칠하는 넘치는 빛깔로
허공에도 색깔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허기진 바람도 잠든 역사의 땅에 책을 들고
당신은 아름다운 그림자로 누웠습니다.
캄캄한 절벽도 지나 대륙의 동터오는 새벽을
300년 틈새를 헤치고 우리 함께 맞아요.
진물 나고 덧나서 쓰라린 이야기도 말끔히 씻고
창공이 무서워 썩은 어둠 지나서 휘휘 그네를 타요
발톱에 찍히는 바람의 무늬 오그라들어 점 하나로 남는 공간
숨어서 껴안는 작은 그림자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에 그네를 매고 나니
우리가 함께 버렸던 하늘이 흙이 되었던
그 비밀을 일러주는 당신의 글발이 내 어깨를 만집니다.
여기 아메리카의 맨살로 일어서는 하늘에서
동양의 빛을 서로에게 발라주며
오류 없는 정답을 조금씩 풀어서
고요하게 평생을 접으려 해요.
© 김정기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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