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현기증 / 김정기

서 량 2023. 1. 10. 19:07

 

현기증

 

                   김정기

  

눈을 감으면 보입니다.

이별이 아깝던 날 청춘의 눈물이

눈을 뜨면 안개 망에 걸려온 저녁 빛

숨지는 햇살에 당신이 가고 다시 오는

질긴 동아줄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산들이 기우뚱하고 흔들릴 때

부서지는 뿌리에 매달린 나무들의 애달픈 사랑

때로는 속을 드러내서 빛나는 최후를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풋풋했던 기억의 방에 들어가

드디어 당신을 놓아 주었지요

만지면 모두 하늘이 되는 땅 위의 형체도

이제 놓아버립니다.

 

막막한 길을 걷는 맑은 피가 균형 잃은 몸을

그래도 받혀 줍니다.

아득해서 더욱 가까운 시간의 눈빛을 마주보며

이 자리가 황홀합니다.

나는 완벽한 흰빛이 되어있습니다.

 

11월30일

 

© 김정기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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