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멀미
김정기
잎들이 밀려온다
도처에서 초록 폭탄에 맞아 숨졌던.
우리는 오랫동안 푸를 줄 알고 외면해버린 아까운 나날
이제 다시 색칠해도 빛 바래져 젖은 잎들만 누어있다.
어둡지 않으면 볼 수 없던 반짝임을
이제 나누어 갖으려 숲으로 간다.
당겼다 놓은 화살이 살갑게 박혀 올 때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초록의 얼굴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져서
초록 그을음에 온몸을 사루며 세상 고개를 넘는다.
고향집 안방 벽지에 그려진 색깔에 구토하던
건방진 젊음이 흔들린다.
사방이 거무스름한 벽으로 다가오는 저녁마다
엽록소 한 방울에 타는 입을 추겨
잊어버린 이름을 떠올리면서 살아난다.
넉넉한 품에 숨어서 숨 쉬는 고요가
초록 번개에 기절한 낮잠을 깨운다.
© 김정기 2013.07.08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어구이 / 김정기 (0) | 2023.01.09 |
---|---|
회색 세상 / 김정기 (0) | 2023.01.09 |
남은 손가락 / 김정기 (0) | 2023.01.08 |
백 년 전 / 김정기 (0) | 2023.01.08 |
D 트레인 / 김정기 (1)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