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Death Valley / 송 진

서 량 2012. 4. 8. 00:42

 

Death Valley*

 

                                          송 진

 

 

삶에 관한 모든 전언은 여기서 멈춘다

생존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이 단지 한 폭의 풍경만을 이루는 곳

해수면보다 190피트가 낮은 지역이라는 표지판을 지나

길은 더 내려가서야 바닥에 닿아 다시 끝없이 달린다

녹색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잡초들 위에

잔설처럼 엉겨 붙은 소금 띠

바다 속 제일 깊은 곳에 그리움으로 켜켜이 뭉쳤던 어둠이

천지개벽으로 태양을 향해 솟구쳤지만

이제는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해

혹독한 시간의 형벌 속에 수정체로 절어버린 깊은 미라들

 

한여름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 같은 연갈색 사막을 지나

마법의 주단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어둑하고 굴곡진 민둥산으로 뻗은 길이 막막하다

북망산 가는 길이 저럴까?

 

어두워 질수록 환해지는 길,

나이 들수록 또렷해지는 길,

절망과 열락이 숨가쁘게 교차하던 날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노을에 빗겨서야 무늬와 결을 드러내는 삶의 길,

생명이 닿지도 못하는 삭막한 풍경의 조합이

마침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지나온 길은 모두 아름다운 건가

백미러로 돌아다 보이는 죽음의 계곡은

어느새 코스모스 만발한 고향길이 되어

모래폭풍처럼 뒤따라 달려온다

 

 

*Las Vegas 북서 쪽, Nevada주와 California주 접경지역에 있는 미국 국립공원 중 하나인 방대한 사막지대. 여름 기온이 화씨 130도까지 올라가 서반구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5월 초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야생화가 피어나 절경을 이룬다고 함.

'김정기의 글동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들레 꽃 배달부 / 윤영지  (0) 2012.05.10
봄동 / 전애자  (0) 2012.04.10
종이로 접는 봄 / 임의숙  (0) 2012.03.23
봄이다 / 황재광  (0) 2012.03.15
위험한 겨울 / 송 진  (0) 201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