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화성의 물 / 김정기

서 량 2022. 12. 18. 18:12

 

화성의 물

 

                       김정기 

 

화성에도 물이 있대요.

숨은 사랑의 열기가 식지 않은 따뜻한 물이

하늘에 떠다닌대요.

나그네의 발자국에도 물이 고여 어둠속으로 스며들고

목마르면 손톱으로 샘을 파서 한 웅 큼 마시면 된대요.

파문이 일지 않는 강물은 밋밋해서 얼음판 같고

위로만 솟아오르는 분수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대요.

물이 있는 곳은 언제나 어둠뿐이라 색깔은 분별할 수 없대나 봐요.

눅눅한 시간 웃자란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도

오래된 사람의 눈빛과 만날 수 있다면

어떻게 되었던 이렇게 불투명한 물속에서나마

소소한 대화의 끈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

제비들이 떼 지어 남극으로 갈 때

묻어서 가다가 화성으로 가겠어요.

화성에 물을 마시면 잃었던 시간이 되돌아온대요.

안과 의사가 말했어요.

하루에 두 번씩 화성의 물을 떠다 눈을 닦으라고.

그러면 세상 끝까지 볼 수 있다고.

화성에는 그런 물이 있대요.

 

© 김정기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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