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물
김정기
화성에도 물이 있대요.
숨은 사랑의 열기가 식지 않은 따뜻한 물이
하늘에 떠다닌대요.
나그네의 발자국에도 물이 고여 어둠속으로 스며들고
목마르면 손톱으로 샘을 파서 한 웅 큼 마시면 된대요.
파문이 일지 않는 강물은 밋밋해서 얼음판 같고
위로만 솟아오르는 분수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대요.
물이 있는 곳은 언제나 어둠뿐이라 색깔은 분별할 수 없대나 봐요.
눅눅한 시간 웃자란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도
오래된 사람의 눈빛과 만날 수 있다면
어떻게 되었던 이렇게 불투명한 물속에서나마
소소한 대화의 끈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
제비들이 떼 지어 남극으로 갈 때
묻어서 가다가 화성으로 가겠어요.
화성에 물을 마시면 잃었던 시간이 되돌아온대요.
안과 의사가 말했어요.
하루에 두 번씩 화성의 물을 떠다 눈을 닦으라고.
그러면 세상 끝까지 볼 수 있다고.
화성에는 그런 물이 있대요.
© 김정기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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