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내 달력에 봄을 앗아간 / 최양숙

서 량 2010. 4. 23. 06:58

 

내 달력에 봄을 앗아간

 

                 최양숙

 

버려진 컵에 찍힌

붉은 입술이 말한다

뜨거운 차를 담았던

단 한 번의 희열이

너무 짧아요

 

부드러운 손길과

따듯한 입김에

불 찾아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하루살이의 삶이

사그라들어

잔인한 4월과 함께

녹차향을 앗아간다

 

누군가 내 시간을 마시고

계절의 향을 맡았나요?

나는 온기를 잃었어요

 

함께 나누었던 웃음

대화를 담았던

그 시간

허공에 띄우고

오가는 사람의 발길에 굴러

끝없이 구겨진다.

 

「시문학」2010년 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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